고향에 내려온 지 열흘째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 고향에 잠시 내려와 아버지 댁에 머물렀다. 오늘로 240시간째, 역대 최 장시간이다. 아빠는 1958년생 개띠, 나는 1994년생 개띠다. 우리는 같은 띠만큼이나 닮은 게 많다. 표정, 체형, 식습관, 눈빛까지. 우리 집은 부계 유전이 세서 자식들은 죄 아버지 닮았다. 나와 아버지가 닮았듯 아버지와 조부가 닮았고, 조부와 증조부가 닮았고, 증조부와 고조부가 닮았다. 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얘기할 때마다 조부와 증조부의 대화를, 증조부와 고조부의 대화를 상상한다. 다 비슷한 말 짓이었을 게 빤하다. 어쩌면 증조부와 고조부가 나와 아버지로 환생해 전생에 못다 한 얘기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곁들인다.
아버지일지도 고조부일지도 모를 남자와 240시간 지내며 느낀 점은 나와 그가 무언의 텔레파시가 있다는 점이다. 하루는 소 내장 요리가 먹고 싶었다. 이를테면 곱창, 대창, 순대 같은 것들. 가위질 한방에 살인지 똥인지 모를 것들이 줄줄 흐르며 꼬순내를 풍기는 것들이 땡겼다. 그날 밤, 아버지가 먼저 한우 곱창전골, 정확히 한우 곱창전골을 먹자고 했다. 눈앞을 알짱거리는 곱과 내장을 아버지도 본 걸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전골집을 찾아 시뻘건 양념 속에서 부글거리는 곱창 한 솥을 다 비웠다. 오늘 곱창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대답 안 한다. 원래 이 양반은 종일 하는 말이라곤 <아침 뭐 먹어, 저녁 뭐 먹어, 그래, 하지 마> 뿐이다. 그런 양반이 먼저 곱창전골 먹자고 할 줄도 알고. 그것도 내가 종일 먹고 싶었던 것을! 이 정도면 텔레파시 맞다.
우리는 내 나이 스물 이후로 한 번도 같이 산 적 없는데 그런 것치고 사는 게 닮았다. 곱창전골처럼 분명한 텔레파시 사건뿐만 아니라 행동의 연쇄작용이 거의 일치한다. 이를테면 아침 식사, 직후 용변, 샤워, 외출복 입고 소파 혹은 침대 걸터앉기, 대략 삼십여 분 가만있기, 커피 마시기, 졸기…. 거의 모든 게 닮아 어제는 앉혀 놓고 물어봤다.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젊었을 적 어땠나, 등등. 평소라면 대답 잘 안 하는데 아비가 궁금한 자식 맘도 텔레파시로 느꼈는지 술술 해줬다. 좋아하는 사람은 앞뒤가 똑같은 사람, 싫어하는 사람은 앞뒤가 다른 사람, 사람은 바른말 해도 돌직구 날리면 피해받았다고 느낀다, 바른말하고 싶으면 돌려해라, 아무것도 원망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어라, 듣다 보니 나랑 하는 생각도 비슷하네.
아빠 젊었을 적 얘기는 아빠 입에서도, 다른 사람 입에서도 많이 들었다. 아빠는 수학과의 깡패로 유명했다. 대학교 후문에 늘 여학생들 괴롭히는 깡패가 있었는데 고놈들 많이 뚜드려 팼다. 깡패 잡아 경찰서 갖다 주는 놈이 수학 귀신이라 진짜 미친놈 같았다고 몇 년 전 아버지 친구들이 얘기한 적 있다. 게다가 수학과 조교수 시절엔 스님 되겠다고 머리 밀고 절에 갔는데 고것도 보면 나랑 닮았다. 나는 아빠가 스님 안 돼서 내가 보살 됐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스님 됐으면 나도 세상에 없었을 텐데 그거 싫다. 아빠 스님 안 하고, 나도 태어나고, 내가 보살 하는 게 낫다. 그만큼 아빠 딸인 거 좋다.
어제 아빠가 너는 서른다섯 되면 작가로 이름 날릴 거라고 했다. 날릴지 모른다 - 도 아니고, 날릴 수 있지 않을까도 아니고, 날릴 거다! 실실 웃음 났다. 사실이든 아니든 보약 되는 말이다. 비장의 무기, 난치병의 특효약쯤으로 글 안 써져 펑펑 우울할 때 꿀꺽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아빠는 시로 등단했다. 등단 작가 말이라 믿고 싶다. 아빠 나는 드라마 쓸 거야. 드라마 멋지게 써서 이름 날릴 거야. 드라마 써서 무속이 이렇다고 제대로 말할 거야, 용기 낼 거야. 세상 사람들 내 이름 알게 할 거야. 잘 살 거야. 나는 명예에 욕심내는 사람이야…. 이런 속내가 있다고는 말 다 못했지만 아빠는 내 맘 읽는 텔레파시 있어 알 것이다. 아빠는 지금 맞은편에 앉아 책 읽는다. 내가 자기 얘기 적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활자 위로 눈만 굴린다. 혹시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중일지. 나는 아빠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걸 모른 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