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긴 우기로 사람이 여럿 죽고, 생면부지 사람 칼에 다른 누군가 찔려 죽었을 때 썼어요. 겨울이 되었는데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요. 모르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음 해서 남겨요. 좋은 밤 보내세요. 늘 응원해요.
긴 우기가 오기 전에 꿈을 꿨어요. 도로가 물에 잠겨 자동차 수 채가 물 위를 떠다니는 꿈이었어요. 언덕 꼭대기에 있는 학교로 겨우 달려서 살아남았고요. 오늘 세상에 비슷한 일이 있었고 마음이 아팠어요. 저와 미미는 나라에 벌어질 크고 작은 일을 꿈으로 미리 보곤 하는데요. 그런 꿈 중 가장 강렬했던 건 이태원 사고가 벌어지기 전에 꿨던 꿈이에요. 소방관 수백 명이 탑처럼 쌓인 사람을 끌어내리고, 이미 숨이 끊긴 사람은 밧줄에 감긴 채 하늘 위로 끌려가는 꿈이었어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숨을 헐떡거릴 만큼 무서운 꿈이었는데 며칠 뒤에 그런 일이 생겼었고요. 이런 직업인만큼 꿈도 예사로 볼 수 없고, 늘 메모장에 적어두는데 얼마나 무섭고 가슴이 아프던지요.
며칠 전에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잖아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또 봤어요.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요. 이번 일은 미미가 꿈을 꿨어요. 사고가 생기기 며칠 전에요. 큰 인파 속에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얼마 지나자 그들이 행인을 칼로 찌르거나 벽돌로 내리찍더래요. 미미는 하늘 위에서 이 모습을 보는 시점이었는데 죽은 사람들이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어디로 사라졌다고 했어요. 이런 일이 ‘ 감히 ’ 생길 수 있는 걸까요.
살다 보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제대로 꼬여버린 실뭉치를 두고 작은 가늠도 할 수 없을 때가. 요즘은 세상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이 통째로 엉켜버린 실뭉치 같다고 생각했어요. 폭풍이 휩쓸고 떠난 자리에 국가는 새로운 판을 짜고, 계획을 나열하고, 성명을 발표할 거예요. 정부를 믿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있는 힘껏 싸울 테고요.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죄를 지었다면 그에 맞는 벌을 받는 이치 아닐까요. 결국 세상은 공평해서 인과응보가 승리할 거라고 내내 믿어요. 정부의 성명, 단체들의 투쟁, 시민들의 목소리, 그거 다 결백으로 향해서 죄인만 잘 보였음 해요.
며칠 전 문무대왕릉에 다녀왔어요. 문무대왕릉은 밤이 되면 무속인이 많이 와요. 초를 켜고 소원을 빌거나 작은 굿도 해요. 언니와 저는 기도를 하러 갔어요. 어슴푸레 밤안개가 앉은 새까만 바다 앞에서 소원을 빌었어요. 자정이 되었을 때, 구름이 걷히고 머리 위로 별이 가득 떠 있었는데요. 하늘을 보면서 제법 괜찮은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언니도 저도 열심히 빌었어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오듯 모든 건 이치를 따를 거라고 간신히 믿으면서요. 최근 벌어진 일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벌어진 게 아니래도 제 마음을 쥐고 마구 흔드는 것 같아요. 괜찮아질 때가 올 걸 알지만 그 예측이 큰 힘이 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모두가 힘들 것 같아요.
산 사람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을 좋아하거든요. 죽은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도 생생한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어지러운 시기에 여러분도 잘 헤쳐 나가시길 바라요. 슬퍼하는 것도, 추모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잊고 살아가는 것도 다 산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걸 잊지 않으면서요.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성실하게 누리고 사시길 바랄게요. 항상 건강하세요. 돈과 명예, 어떤 금쪽같은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거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