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화에서 나는 나의 5대 조부를 대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내 팔자가 신 받지 않으면 일찍 죽는단 얘기, 학자 명맥 대단한 집안에서 어떻게 무속인 나왔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얘기도 했다. 계속 이어가 보자. 먼저 사람이 왜 무속인이 되는지, 어떻게 되는지 적어보려 한다.
무속인의 첫 번째 조건은 신이 있는지다. 국가 성립조건 세 가지 국민 영토 주권인 것처럼 무속인도 성립조건이 있다. 첫 번째가 신이 있는지다. 무교(巫敎)는 유일신 한 명이 아니라 성격 다른 여러 신이 있다고 본다. 신들의 종류가 많아 무속인의 명패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할머니, 누군가는 선녀, 누군가는 동자. 그러나 무속인은 그분들만 모시지 않는다. 명패에 선녀가 들어간다 해서 선녀만 있는 게 아니다. 무속인의 명패는 모시고 있는 신 중 가장 앞서 나오는 신, 즉 주장신을 명시한다. 주장신은 가장 앞서고 가장 많이 나오는 신일뿐이다. 무속인은 명패 제각각이지만 [ 대신 할머니 ]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 대신 할머니는 무교(巫敎)에서 점 보는 신명의 대표주자 격이다. 주장신과 별개로 무속인은 필시 대신 할머니가 있다.
대신 할머니는 무속인의 조상이다. 무속인의 윗대 할머니 중 한 분이다. 살아생전 무당으로 불리셨거나, 기도에 통달해 혜안이 있거나, 돌아가신 후 신으로 후손 몸에 내려와 잘 살게 해 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짚는다. 나는 대신 할머니가 없다. 우리 집은 살아생전 무속인 한 조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5대 조부가 대신 할아버지로 앉아 계신다. 정확히는 글문 대신 할아버지다. 이분이 살아생전 학문에 정진했고, 사주나 풍수지리에 통달한 격이 여느 대신 할머니 점사 실력 못지않다. 그래서 대신 할머니 없어도 지금껏 가능했다. 때문에 나는 점볼 때 사주를 받는다. 대신이 사주를 보기에 사주를 받는다. 같은 맥락으로 지금껏 브런치에 올려 여러분께 사랑받은 모든 글도 나의 글문 대신 할아버지가 있어서 쓴 글이다. 이 분이 살아생전 글 쓰셔서 쓸 수 있다. 무속인 몸에 신이 실려 정신없이 점 보듯, 나의 모든 글도 그런 식으로 쓰이는 이치다.
무속인의 조건이 신이고, 그들이 살아생전 조상이었다면 어떤 조상이 신으로 올 수 있는가. 생전에 무당이라고 무조건 대신으로 들어올 수 없다. 조상 중 후대 무속인 만들 정도면 보통 대단해야 하는 게 아니다. 한 번 무속인은 평생 무속인이다. 평생 가는 무속인 삶에 단 한 줌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데 무속인 보호하는 신은 얼마나 힘 있어야 된단 말이겠는가. 신으로 오는 조상은 살아생전 대단히 불렸거나, 남들은 엄두 못 낼 기도를 수십 년 했다거나, 말하자면 보통 깨끗하고 똑똑하고 영검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근데 그런 조상이 어디 흔한가. 그런 사람 안 흔하고 그런 조상 안 흔하다. 그런 조상 안 흔해서 세상에 무속인 많으면 이치에 안 맞는 거다. 물론 모시는 신이 조상에서 온 게 아니라, 일말 연고 없는 천상에서 오는 경우가 있으나 그런 경우는 무속인 천 명 중 한 명도 안 될뿐더러 사는데 제약이 너무 많아 조용하게 유명하다. 지금껏 올렸던 시리즈 [ 미미에게 ] 미미가 이 경우다. 미미의 대신 할머니는 조상, 즉 5대 조모지만 미미의 선녀가 연고 없는 천상 선녀다. 일전에 미미 모친을 주제로 한 글에서 말한 적 있다. ( 제목 : 김순자, 우리 엄마 ) 천상에서 신이 오려면 미미 모친이 십 년 빌고, 삼천 배 백 번도 더 했듯 집안에서 치른 공이 그쯤 되어야 한다. 하물며 천상인데 쉬울 수 있겠는가.
보통 힘 있는 게 아닌 조상이 대신으로 들어왔다면 ( 혹은 천상에서 왔다면 ) 다음 조건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속인 그릇 되는지 봐야 한다. 우선 무속인 팔자는 명이 짧다. 나만 해도 팔자에 사고가 많아 이 길 오기 전 안 다친 곳이 없다. 나뿐만 아니다. 무속인 나와야 할 집은 누군가 신 받지 않으면 우후죽순 폐허 된다. 무속인은 신을 받아 한 집안을 살린다. 그 막중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신은 신병을 일으켜 알아본다. 신병이 일고, 집안이 망가져도 누가 신의 잃지 않고 살아남는지 지켜본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게 곧 무속인 그릇이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신 나쁘다고 한다. 바람 내지 말고 그냥 살게 두면 안 되냐 묻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속인 나올 집안은 누구 하나 신 받지 않으면 다 죽게 돼 있다. 제각기 그런 팔자 타고나서 신이 나선다. 신은 단단한 한 사람 속세 밖으로 내몰고서라도 이 가정 살리고 싶다. 또한, 명 짧은 자손 무속인 만들어서 오래 살게 하고 싶다.
나는 집안 대대로 학자 명맥 이은 가운데 내 5대 조부가 글문 대신으로 들어온다. 집안 학자 명맥을 초석 삼아 조상이 대신으로 들어온다. 살아생전 무속인만 대신으로 오는 게 아니라, 공부에 통달했고 학맥 깊어도 대신으로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흔하지 않을 뿐이다. 학맥 깊음과 동시에 5대 조부가 사주와 풍수에 통달해 가능한 격이다. 누군가 이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모시며 글을 쓰거나 점 봐야만 집안 풍파가 없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고, 그중 명 짧고 젊은 내가 모셨다. 정리하자면 조상 중 무속인 없어도 조상 힘이 대단해 대신으로 들어오고, 이를 모시고 살아야 할 게 우리 집 사례다.
자, 중요하다. 나의 사례로 미루어 보자. 세상에 조상 힘 있는 집이 우리 집뿐이겠는가. 1화에서 말했듯 이곳에 양반이나 선비 집 자제 많고, 하물며 누군가는 무속인을 조상으로 뒀을 텐데 그들은 왜 신 안 모시나. 세상에는 무속인 될 건 아닌데 신 있는 경우, 무속인 될 건 아닌데 빌고 살아야 할 경우가 있다. 혹자는 점집 가면 빌고 살아야 해 – 같은 얘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 세상은 넓다. 무속인 몇 명만 고작 신 있으란 법 없다. 세상에 운 있고 우연 있는 이치를 보라. 인간은 운에 기대고 운을 느끼는데 어찌 무속인만 신 있겠는가. 다만 그들의 신이 모셔서 점 볼 신이 아닐 뿐이다. 그들 이야기로 계속 이어가 보자. [ 3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