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5대 외조모. 그는 생전 거나한 기생각의 주인이자, 그곳 방 한 칸에서 신 모시고 손님받고 신병이나 무병 앓는 사람 고쳐도 줬다. 그러나 전염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당시는 역병이 돌면 온 나라가 뒤집혔는데 31살이던가, 32살이던가 그 해 창궐한 역병에 걸려 죽었다. 대단한 인생이었다. 애 밴 여인이 애 뺏기지 않으려고 집 나오고, 어디서 살든 버텨내고, 큰 기생각 주인 되어 손님 받고 점도 보며 거부(巨富)됐다.
5대 외조모는 죽어서 먼 훗날 대신으로 왔다. 천상에서 온 미미의 선녀와 손잡고 법당 차렸다. 미미 법당의 대신 자리는 5대 외조모가, 선녀 자리는 태어날 때부터 있던 천상 선녀가 차지했다. 5대 외조모는 아이에 한 있어 유난히 아이 관한 점괘 잘 뽑고, 실력 있어 다른 점괘 잘 뽑고, 천황 잘 잡아 위세 떨친다. 살아생전 기생각서 시조 잘 지어 지금도 미미 몸에 실려 시조 잘 뽑는다. 외에도 미미의 법당에는 4대 조모가 맡은 넋대신, 천상에서 온 천상 장군, 그리고 5대 외조모가 살아생전 잃어버린 네 살 여자아이도 죽어서 선녀 되어 법당에 앉혔다. 5대 외조모는 대신 되어서야 선녀 된 딸과 한 방 사는 셈이다.
무속인이 모시는 신은 제각각이다. 미미가 5대 외조모를 대신으로 앉혀 천황을 잡고, 나는 5대 조부를 대신으로 모셔 글을 쓰듯 말이다. 저마다 이름과 역할, 도술이 다르다. 그래서 무속은 불교나 천주교, 기독교처럼 경전을 쓰기 어렵다. 불교나 뭇 서양 종교처럼 유일신이 말씀을 전파하는 형태라면 그 말씀 모아 경전 낼 수 있으나 우리는 각자의 윗대 어른 중 대신으로 오는 이를 모시니 법당마다 역량과 역할, 하는 말에 차이가 난다. 대신도 어느 분야를 잘 아는지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대신이 제각각이라 무속인 서로는 각자의 대신을 받들며 뜻하는 바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데, 어느 무속인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보다 당신과 잘 맞는 무속인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면 된다. 병원도 다녀보면 맞는 곳 아닌 곳 있듯 법당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자, 나는 어떻게 무속인 되었나. 나는 나의 5대 조부를 대신으로 모시고 점 보며 글 쓴다. 나는 파란만장케 살았고 무속인 되고 누구 하나 입 뗄 것 없이 살았다. 역사서에 이름 알리고 나라 등재된 인물 많은 집에서 무속인 나와 괄시받았으나, 잘 먹고 잘살고 깨끗하게 살아 집안 대소사 돌보며 누구 하나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신 있다고 한다. 신 있어서 내 인생 반전된 거 나는 안다. 내가 절벽서 살아온 모든 시간 봐 온 사람도 신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미미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섯 편의 긴 장정을 달렸다. 꼬박 이 주간 썼다. [ 나는 어떻게 무속인 되었나. ]에서는 나의 배경, 미미의 배경, 신이 있는 일반인들, 특히 세준 신과 대감 신이 있는 일반인들에 관해 썼다. 나는 무속에 관한 정보를 전파하는 데 있어 믿는 것은 당신 몫이라고만 한다. 나는 내가 믿고 따르는 바가 정답이라고 말할 생각도, 믿음을 강요할 생각도 없으며 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 그친다. 여러분 알다시피 무엇을 믿고 따르는지는 오롯이 당신 몫이다. 나는 그 영역을 함부로 건널 생각도, 건드릴 수도 없다.
이 시리즈에서 말 못 한 얘기들이 많다. 장군이나 동자, 선녀가 따라다니는 일반인들 얘기도 못 했고, 마음 같아선 세준 신, 대감 신, 무속에서 일컫는 모든 신들을 개별적 이야기로 풀고 싶다. 한 줄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세준 신의 역사와 하는 일, 세준 신이 오면 어떻다든지 하는 것들을 자세히 적고 싶다. 아마 멀지 않은 때 가능할 것 같다. 글을 쓰면 쓸수록 말하고픈 세계가 확장된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오는 이 막지 않고 나가는 이막지 않는다. 인연이라면 언젠가 만날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연인 줄 알았으나 인연이 아닌 이, 인연이 아닌 줄 알았으니 인연인 이들이다. 나는 무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사람을 속단할 수 없다. 나는 점 보고 미래 보지만,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미래를 바꾸고 인연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속에 관한 글은 두어 번 쉼을 갖고 다시 쓸 예정이다. 신병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신내림 받을 때 신이 몸에 실리면 어떻게 되는지, 이렇듯 궁금한 얘기가 많을 것이다. 사람들 이목 끌기 좋은 주제다. 이런 주제일수록 아껴놓고 쓰련다. 비가 많이 온다. 이틀 새 그치지도 않고 주룩주룩. 여섯 편의 글로 이 시리즈를 마친다. 좋은 곳에 닿아 좋게 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