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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Dec 13. 2023

나는 어떻게 무속인 되었나.(5)

신의 도술.

 

 미미의 5대 외조모는 열몇에 안동 김가로 시집왔다. 시집왔는데 이상했다. 밤만 되면 혼잣말하고 집 나가서 이 집 저 집 점 봐주고 들어왔다. 며느리 이상해서 밥 굶기고 광에 가둬놨다. 알아보니 며느리 친정이 대 무당으로 불린 집이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며느리에게도 신이 온 거였다. 광에 갇힌 며느리는 태중에 애 있는 거 알고 집 나오기로 맘먹는다. 시댁서 애 낳으면 애 뺏길 것 같았다. 광에서 탈출해 그 길로 집 나왔다.


 그 시절 시집가서 애 밴 여자가 집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는가. 사람들 손가락질 피하고, 매질 피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도 기구한 여자 될 뿐인데. 멀리 도망쳐 저잣거리 횡횡하던 여자는 주막집서 먹고 잔다. 태중에 있는 애만이라도 제발 살려 달라는 걸 주막집 주인이 거둬들인 듯하다.


 여자는 주막집서 애도 낳고 일도 잘해 예쁨 받는다. 여자 보러 오는 손님 많고, 계산이 빨라 주막집에 도움 된다. 애도 낳고 잘 기른다. 집 나온 며느리라 도 잘 먹고 잘 지내고 아이도 잘 자란다. 애가 서너 살쯤 되었을까. 애는 여자라도 성미가 우직하고 겁도 없꼭 사내아이 같았는데 엄마 눈길 피해 집 나가 놀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 길로 사라졌다. 여자는 영영 미칠 것 같았다. 온 저자와 고을을 돌아도 아이 없어서 여자는 제발 돌아오라고, 어느 집에라도 거둬져서 잘 먹고 있으라고 빈다. 애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곳에 있거나 편히 하늘 가라고 꽃에 빌고 들에 빈다.


 그래서 5대 외조모는 아이에 한이 있다. 태중에 애 있어 집 나와 빌어먹고 살았는데 금쪽같은 애가 미아 되고 죽어버려서 애들 살리는 도술이 있다. 이를테면 손님 중 아이 못 가지는 손님 있으면 빌어서 애 만들어 주고, 아이가 병명 없이 아픈 집 있으면 살리는 방법 가르쳐 주고, 아이가 말 안 들으면 말 잘 듣는 방법 가르쳐 준다. 살아생전 아이에 한이 있어 아이가 속 썩이는 집은 유난히 잘 봐주는 이치다. 그 점괘나 도술이 어찌나 좋은지 처음 5대 외조모를 대신으로 모실 때 삼신처럼 보였다. 아이 내려주는 삼신할머니 말이다. 삼신은 만물신이라 어느 제자도 모실 수 없는데 이 할머니 도술이 뭇 삼신 못지않다.


 이렇듯 대신은 살아생전 어떤 한을 지고 죽었는지에 따라 잘 보는 영역이 달라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신으로 모시는 5대 조부가 벼슬로 나라에 등재되고 이름 알린 선대들만큼 명성 못 떨친 한이 있다. 5대 조부는 살아생전 몸이 약하고, 집안 대를 잇고 보존하는 역할로 대사에 나서지 못했다. 5대 조부 살아생전은 외척의 침입이 많아 관직에 나서면 위험 처해 대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름 알리고 싶은 손님, 관직에 나설 손님, 큰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손님이 많이 온다.


 다시 5대 외조모의 생전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 잃은 여자는 영 미쳐서 저자를 횡횡한다. 콱 죽으려고 많이 했다. 근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제자 팔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몸에 대신이 있어 죽을 고비 넘는다. 목숨 끊어질 것 같아도 안 끊어지는 게 제자다. 나도 미미도 다 그랬다. 그 시절 5대 외조모도 대신 모시고 무당 할 팔자니 잘 죽지 않았다. 여자는 독하게 산다. 여느 주막 찾아가 재워달라고만 한다. 일 잘하고 계산 잘해 주막에 도움 된다. 여자는 거기서 손님 한 명 만난다. 손님은 셈 잘하고 눈치 빠른 여자 알아본다. 어느 날, 저자에 큰 기생각을 차리는데 일 맡아줄 수 없겠냐고 한다. 여자는 기생 안 하고 머리 안 올리고 그저 큰일 작은 일 열심히 배운다. 말하자면 장부 관리나 손님 관리다. 기생각 방 한 칸 얻어 신도 모셨다. 오는 손님 점 봐주고 고쳐준다.


 당시 5대 외조모가 침놓거나 손으로 막힌 혈 고칠 줄 안 모양인지 대신으로 올 적에도 사람 아픈 곳 잘 맞추는 도술이 있었다. 5대 외조모가 기생각서 일 해도 기생 안 하고, 돈 관리 잘하고 점을 잘 봐 손님이 줄 선 모양인지 기생각 주인은 웬만한 일들을 맡긴다. 요즘 말로 치면 바지사장이다. 5대 외조모는 탱화와 똑같이 생겼다.



 탱화는 무속 가게서 사는 경우, 탱화 그릴 줄 아는 이가 직접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미미 집 탱화는 할머니 모습을 본떠 직접 그린 형식이다. 탱화 그리는 이들 가운데도 윗대 그림 그렸던 조상이 신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 중 기도로 다른 집 대신을 화경으로 보고 그리는 이들이 있다. 5대 외조모는 성격 화통하고 우직하고 눈치도 빨라 못하는 거 없다. 기생각서 일해 보고 들은 거 많고 성격도 노는 거 좋아한다. 천황 ( 굿판에서 노래나 춤을 부리는 일 ) 잘 잡을 수밖에. 아이에 한 있고 사람 고치는 거 잘해 대신으로 올 적에도 이 맥락에는 일등이다. [ 6화에서 계속 ]



 

 * 한 가지 첨언합니다. 여기서 사람 살린다, 아이 살린다는 웬만한 아픈 사람을 통칭하는 게 아니라, 병 중에서도 신병 혹은 무병, 저희 같은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병을 일컫는 말입니다. 양약 먹고 병원 가야 할 병이 아닙니다.


 제 글이 어느 분은 소설 같기도, 판타지 같기도, 이러한 세계가 실존하는 게 믿기 어려우실 줄 압니다. 꼭 믿어주십사 쓴 글이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이 잘 모르고, 궁금하셨던 세계에 관해 읽히기 쉽게 묘사했으니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초하룬데요. 저는 아침 공양 마치고 기도 잘 드렸습니다. 이번 달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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