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미미의 엄마. 우리 순자는 늘 조심하라고 말했다. 운전해 멀리 나갈 때도,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여하튼 마지막 인사가 늘 조심하라는 거였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됐다. 멀리 운전하는 일은 그렇다 치고 어째서 별별 일들에 다 조심하라는지, 정확히는 맥락상 사람 만나는 일이나 밥을 먹으러 가는 일에 조심하라는 말이 따라붙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순자가 조심하라고 할 때, 당최 무엇을 조심하라는지 묻는 것도 웃겨서 그냥 알겠다고 말았지만 늘 궁금했다. 순자야, 엄마야, 대체 무엇을 조심하라는 거야….
시간이 흘러 차츰 순자 말을 이해하는 중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 것도, 운전해 가는 것도, 집에 가는 것도 다 조심하라는 말이 따라붙던 순자를 뒤늦게야! 나는 3년 전, 미미와 순자가 사는 부산 이 동네로 이사왔다. 정말 미미와 순자만 믿고 부산으로 온 거고 적응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나는 서울깍쟁이로 십 년을 꼬박 살았고 급작스런 이사에 모든 게 어색할 수밖에. 소금기 하나 없는 국을 좋아하는 내게 부산 음식은 너무 짰고, 순하고 부드러운 서울말만 듣다가 거친 부산말에 둘러싸였을 땐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슈퍼 아저씨며 세탁소 사장님이며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은지. 사실 그들은 화난 게 아니고 말투가 그럴 뿐이다. 구수한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뭐라고 하셨는지 묻고 또 묻다가 답답하단 성화를 몇 번씩 끌어 먹혔다. 동네 사람들 눈에 어리숙함을 넘어 얼빵(!)한 모양새로 돌아다녔으니 순자는 말끝마다 조심하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의 얼빵(!)한 모양새가 조심하란 말을 유발한 것도 맞지만, 사실 순자는 더 큰 이유가 있어 보인단 거다. 부산에 적응한 후, 양념 안 된 음식은 먹기도 싫고 이 동네에서 가장 거친 말을 구사하는 사람이 내가 되었을 때도 순자는 조심하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순자가 조심하란 말을 달고 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지도 몰랐고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랄까. 살아 보니까 순자 말이 이해된다. 나는 얼마 살지도 않아서 '살아 보니까' 같은 수식을 붙이는 건 몸이 막 근질거리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살아 보니까 사는 건 온통 조심할 것 투성이라는 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거 말이다.
운전할 때는 사고 안 나게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밥 먹을 때는 예의 있고 흠 잡히지 않게 먹어야 하고, 친구 만날 때는 상처되는 말 안 하게 조심해야 하고, 나이 서른한 살 먹었어도 순자 눈에는 철딱서니 없이 뽈뽈 거릴 때가 얼마나 많겠는가. 조심 안 하면 벌어질 수천 가지 사고들을 인생 선배 김순자는 일찍이 경험 다 해보고 조심하라고 말하겠거니 싶었다. 먹고, 쓰고, 말하는 거 다 조심해서 어디서도 흠 잡히지 않는 예쁜 딸로 살아라, 누구 하나 상처 주지 않고 다치거나 아프게 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라, 그러려면 조심해야 한다 아니었을까.
우리 순자는 미미 엄만데 우리 엄마다. 며칠 전에는 지독한 열병에 걸려 앓아누운 나를 위해 꽃게를 다섯 마리나 넣어 된장을 끓여 왔다. 어른 얼굴만 한 꽃게가 탕 속에 그득 들어앉아 있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꽃게 된장국 줄 때도 입 안 다치게 조심해라 잔소리했다. 나는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 아니라도 아프면 죽이고 밥이고 잔뜩 해다 주는 김순자 생각해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바보 같은 김순자.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일하고, 고작 몇 시간 자고 출근하면서 나를 챙겨주는 바보 같은 김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