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향 땅에서 기도가 많아 부산과 고향을 계속 오가는 중이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 아버지도 이곳에 계신다. 부산에서 차로 3시간 남짓인데 내 차가 08년식 폭스바겐 비틀이라 너무 오래됐고, 장시간 달리면 엔진서 괴이한 소리도 나서 웬만하면 버스 타고 다닌다. 버스로 3시간 30분 걸리다 보니 한 번 고향 오면 일주일씩 아버지 댁에서 묵고 가는데 그동안 식사 준비는 모두 내 차지다. 우리 아버지는 나이가 70이 다 되도록 아직 사업하고, 외국 출장도 잦아 부엌일이라곤 조금도 몰라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고모가 식사 챙겨주곤 하셨다. 내가 머무는 동안은 고모 피곤하게 안 하고 싶어서 나름 노력하는데 영 글렀다. 나는 20살 때부터 서울서 자취했지만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이 없는 데다 아빠 입맛은 초딩스럽고 같은 반찬은 이틀 이상 안 먹으려 해서 곤욕 치르는 중이다.
난생처음 유튜브에서 반찬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거기서 보고 콩나물도 무치고, 호박전도 하고, 햄도 부치고, 이것저것 만들어서 해다 바쳤다. 당연히 맛은 없었다. 음식은 요리사의 감이 중요한데 요리 자주 안 해본 내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어떤 건 밍밍하고 어떤 건 짜고, 의도한 바와 거리가 아주 멀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생겼다. 바로 어제 만든 콩나물밥의 맛이 아주 대단했다는 것. 아빠도 나도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유튜브 유지만 님의 콩나물밥 레시피를 따라 했다. 어찌나 쉽고 간편하던지. 그저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두 번 세 번 전하고 싶다.
전자레인지용 그릇에 밥을 넣고, 버섯을 채 썰어 넣고 그 위에 콩나물을 몇 줌 그득그득 올려준다. 위에 랩 씌우고 숨구멍 만들어주고 레인지에 5분 정도 돌렸다. 양념은 간장 세 숟갈, 물엿 한 숟갈,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반 숟갈, 대파 썰어 넣었다. 꼭 유튜브에서 유지만님 계정에서 콩나물밥 레시피 찾아보시라. 10분 안에 저녁 한 끼 뚝딱 만들고, 그 맛에 반해 오늘 아침에 또 해 먹었다고…. 초딩 입맛 아빠도, 어른이 입맛 나도 만족한 근사한 식사였다. 우리 아빠는 같은 반찬 이틀 안 넘기는 고약한 버릇이 있어 내일은 못 먹겠지만 먹을 거 없을 때 치트키로 무한정 활용할 생각이다. 감사합니다 유튜버님.
주말에 부산 내려가면 며칠 뒤 다시 고향에 와야 한다. 기도가 길어져 이런 생활을 당분간 할 것 같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자주 버스 타고, 매일 산을 오르고,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손님 보고, 아버지 매 끼니 챙겨드리는 모든 일정을 기분 좋게 해내려면 마음이 단단해야 한다. 작년 12월부터 이렇게 지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너무 바쁘고 잠은 못 자고, 하루는 열이 39도를 넘겼는데 며칠씩 전화 손님이 그득 있어 새벽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응급실서 수액 맞고 전화하고 그랬다. 독종같이 이 악물고, 실수 한번 안 하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해냈는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나 진짜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사람이구나, 나 욕심 많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하면서…. 몸 축내가며 일하는 거 절대 하면 안 될 일이지만 젊어서 괜찮다고 떵떵거리는 중이다.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 이 삶은 오롯이 내 것이라 내가 원하는 형태로 있었으면 해서 이러는 것이다.
끝 간 데 없이 열심히 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시험해 본다. 힘들어도 참고 사는 거 얼마나 큰일인 줄 알아서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 다 사랑스럽다. 아버지 밥해 먹이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해내는 것 같다. 나이 70살 다 되도록 외국 돌아다니고, 전화기 붙들고 앉아 갖은 거래처 상대하는데 당연히 잘 먹어야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부모 자식 간이라 이유 묻지 않고 챙기는 거 당연하지만, 나는 밥 지을 때마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 열심히 하는 아빠 대견해서 잘 차려주고 싶다. 어쩌면 전생에 내가 아빠의 부모 아니었을까. 딱 초딩 입맛 아들, 일 열심히 하는 거 대견해서 맛있는 거 해 먹이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