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고향 영주에서 열흘 꼬박 지내고 그제 부산에 왔는데, 나 부산 오는 날 맞춰 친구들이 다 같이 시간을 내줬다. 미미도 이날은 손님 받지 않았고 대전에서 민규도 와줬다. 전부 다음 날 오전부터 일 있는 사람들이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잠깐 보는 거지만 그래도 좋았다. 요즘 신년운세 철이라 친구들 신년운세도 봐주고 싶었다. 미미와 나는 매년 서로의 신년운세 봐줬고, 때맞으면 민규도 덩달아 듣고 그랬는데 올해도 딱 시간이 됐다.
일광 바다 근처에서 칼국수 먹고 우리 집으로 와 신년운세 시간을 가졌다. 미미와 나는 다음 날 같이 있을 예정이라 곧 대전 돌아갈 민규를 첫 순서로 봤다. 나는 민규 점 볼 때마다 긴장한다. 민규는 우리 앞에서 딱 근심 걱정 많은 어린애처럼 구는데 점 볼 때도 그렇기 때문이다. 까딱 쓴소리 하면 왜 자기한테만 엄격하게 구냐고, 앞으로 어떻게 하냐고 발 동동 애 닳는 소릴 하는데 그런 애한테 무슨 얘길 할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점을 치겠지만 민규가 애 닳는 소릴 하는 그 순간 맘이 편하진 않다.
민규는 참 재수가 좋다. 민규 팔자는 운 좋아서 잘 굴러 떨어지는 법이 없다. 팔자는 좋은데 당신 성격이 굴러 떨어질까 봐 지레 걱정하는 타입이라 사는 게 고달플 뿐이다. 올해 대운 들어 한 해가 짱짱한 민규는 사업도 잘되고 돈도 잘 벌고 그럴 거다. 근데 문제가 내년부터 삼재라는 거다. 삼재는 삼 년간 악재를 주의하는 그런 기운인데, 내년 삼재 띠에 민규가 있었다. 삼재는 타는 사람 있고 덜 타는 사람 나뉜다. 삼재 들어도 잘 살았던 사람도 있잖은가. 그런 것처럼 삼재는 타는 사람, 덜 타는 사람이 다르다. 우리 민규는 삼재 잘 타는 사람인데 앞으로 이것만 걱정하게 생겼다.
“ 민규야 올해 운 좋네. 근데… 내년부터 삼재네. ”
그때 곽민규 표정을 나만 본 게 아쉽다. 왜 세상이 자기한테만 엄격하냐고, 왜 삼재냐고, 아주 울상이 되어서는 발 동동거리는데 거기다 대고 그렇다고 네 띠를 갈아엎을 수는 없지 않니, 나이가 서른 된 놈이 그런 소식에 발 동동거려서 되겠니, 그래서 대기업을 세울 수는 있겠니, 그런 소리가 목구멍까지 한가득 차올랐지만 일단 참아봤다. 우리 민규가 우리 앞에서나 투정 부리지 밖에서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사업하는 놈인 거 아니까. 그래도 친구는 친구다. 앞에서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니까 나도 생전 손님한테 안 하는 욕 잔뜩 한다. 그냥 사업을 접으라는 둥, 삼재가 무서워서 큰돈 만지겠냐는 둥, 네가 그래서 나이를 허투루 먹은 거라는 둥…. 그러면 민규는 왜 욕하냐고, 왜 뭐라 하냐고, 그때부터 핏대 세우고 달려든다. 그렇게 한참 투닥투닥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민규야 그래도 너 알다시피 너는 운 좋은 놈이라 삼재를 타도 괜찮을 거라고, 그거 다 인생 공부할 때라고 한다.
내가 민규랑 핏대 세워서 한참 싸우면 미미는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있다. 똑같은 것들끼리 잘 논다고. 민규가 우리에게 응석 부리는 것처럼 나도 미미한테는 응석받이다. 무슨 일 있으면 해결해 달라 징징, 어떡하냐 징징, 미미는 내가 징징거릴 때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해결 다 해준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이자 어른, 형제, 뭐 그런 것쯤 되는 것 같다. 너무 감사하게도 말이다. 무슨 일 있으면 맞댈 머리가 여러 개쯤 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세상 살아가는 데 확실한 보탬이 된다.
우리는 올해 다 삼십 대가 됐다. 유일한 이십 대인 곽민규가 올해로 서른이 되어 우리 중 이십 대는 한 명도 없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손가락 욕할 것 같다는 농담,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비슷한 사유로 싸울 거라는 농담은 변함없다. 한 살 더 먹었다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친구일 것이다. 단 한 번 변치 않으며 수년을 보냈고, 그 수년이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라는 든든한 증명이 되어준다. 친구들 덕분에 열심히 살아간다. 오늘은 또 다른 친구 우영을 만난다. 밥 먹고 나서 우영의 신년 운세를 한번 봐줘야겠다. 공짜 신년운세는 무당을 친구로 둔 특혜다. 카페 사장인 우영에게 얻어먹는 공짜 커피로 퉁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