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좋은 시간이 있다. 오후 3시와 4시 사이, 햇빛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방을 가로지를 때다. 산 중턱에 있는 우리 집은 어느 때나 새가 많이 울었는데 오후 서너 시에는 새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어느 날은 참새, 어느 날은 까치, 박새, 까마귀, 내가 아는 새 이름은 이 정도지만 그간 들었던 다른 소리는 훨씬 많았으니까 분명 더 많은 종류의 새가 이곳에서 날고 있을 것이다.
내 방에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 커다란 여인초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몇 년째 함께하고 있는 몇 가지 식물이 있다. 서로의 성장을 침해하지 않으며 위로, 옆으로 잘 자라주고 있다. 오후 3시와 4시 사이에는 그들 위로도 햇빛이 깔리는데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이 시간을 좋아할 것이다.
어느 날은 미미의 집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 그 시간을 즐겼다. 미미의 집은 창문이 크고 창밖으로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다. 창문을 열었을 때 물기 넉넉한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온다. 차갑고 시린 풀 냄새, 젖은 땅 냄새가 뒤섞여 난다. 오후 3시와 4시에는 미미 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중학교에서 학생들도 무리 지어 나온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나는 학생들을 봤지만 미미는 다른 걸 봤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퍽 좋다는 건 같을 것이다.
머리를 써 말하지 않아도, 눈치를 살펴 문장을 깎지 않아도, 가타부타 말할 것 없이 함께 있는 게 마냥 좋은 사람이 있다. 내게는 미미가 그렇다. 오후 3시와 4시, 사선의 빛, 이름 모를 풀들의 냄새, 어디로든 걸어가는 중학생들, 어느 곳을 향했는지 모를 미미의 눈. 나는 3시와 4시, 방으로 기우는 햇빛을 볼 때마다 이 기억이 떠오른다.
한 뼘 더 가서, 좋은 기억으로 살게 했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려본다. 미미는 내게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줬다. 기술자였던 우영은 못 만드는 게 없었는데 가구, 음식, 커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민규는 어린애 같지만 일할 때는 누구보다 잘했고, 지인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미미와 그들은 오후 서너 시 햇빛의 기울기로 내 세상을 기울인다. 좀 더 따스한 쪽으로 기울여 쭉 아늑하게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건 받침을 둥글게 깎는 일이라고 걔들에게서 배웠다. 사람, 사랑, ㅁ이 ㅇ이 되려면 네 모서리를 깎는 일인 것처럼, 나는 사람을 사랑하려면 나를 깎을 줄 알아야 한다고 걔들을 알아가면서 배웠던 것 같다. 우리는 비슷한 데라곤 없어서 알아가는 내내 밀고 당기고 다퉈야 했고, 그러면서 각자를 돌아보고 친구가 됐으니까. 나는 결국 걔들 곁에서 둥글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시각에 떠오르는 사람이 걔들이라 확신할 수 있다.
아무쪼록 부끄러운 마음을 적었다. 말로 하자면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월 말, 3월 초에 나올 책을 만들면서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언제나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글 꾸러미는 전부 걔들에게서 왔다.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나 어렵게 한다. 이 글은 곧 지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