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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Feb 06. 2024

서른 된 남자에게 생일 선물 주기.

 그 친구 생일은 한 번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만나서 비싼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그랬는데 그럴싸한 선물은 준 적 없다. 갖고 싶은 게 뭐냐 물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고, 꼭 생일이 아니어도 언제든 좋은 선물 해줄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제대로 줘야 할 것 같았다. 친구 이름은 민규인데 민규는 올해 서른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뭘 받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 애는 다 괜찮다고만 한다. 곧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니까 유로를 환전해 줄까 물었더니 그거 받으면 그대로 돌려줄 거랬다. 매년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생일을 지나쳤다. 밥 한 끼 사 먹이는 것도 괜찮았겠지만 민규는 매년 나와 또 다른 친구 미미의 생일을 알뜰히 챙겨줬는데 올해는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민규가 무려 서른이 되었으니까.


 작년, 내 나이 서른부터 생일 챙기는 게 이상했다. 그런 징조는 이십 대 후반부터 쭉 있었는데 서른 되자마자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빡 왔다. 나는 작년 생일에 아버지가 서울 큰 병원서 수술이 잡혀 있어 부산을 떠나 있었는데 수술 마친 아버지 고향 모셔다 드리고, 다시 부산 가는 복잡한 일정 중에 생일 선물을 받았다. 세상에 이름나는 데 욕심 있는 사람은 옷이 깨끗해야 한다고 미미와 민규가 백만 원 남짓의 셔츠를 선물로 줬다. 내 친구들은 성향 자체가 사치 안 부리고, 불필요한 돈 안 쓰고,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 떨어져도 모으고 보는데 친구 생일에 백만 원씩이나 하는 단벌 셔츠를 무작정 사온 걸 보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내 친구들은 그렇다. 불필요한 돈 안 쓰지만 필요한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 잘 안 한다. 올해 민규 소망은 머리가 더 총명해지길 바란다는 건데, 그런 사람도 새 옷이 필요할 것 같았다. 머리 총명해지고 싶은 게 뭔가. 더 나은 사람 되겠다는 말 아닌가. 더 나은 사람 돼서 걸어가겠다는데 당연히 새 옷 있어야 된다.


 그런 이유로 백화점 가서 비싼 셔츠와 니트를 한 벌씩 사고, 조금 모자란 것 같아 값나가는 브랜드에서 남자 화장품도 샀다. 민규는 어깨는 넓고 몸은 날씬해서 옷태가 잘 사는데 나는 그게 얄미워서 미미한테 대충 휴대폰 케이스나 하나 사자고 꼬장을 부렸다가 몇 번 꼬집혔다.


 “ 마 저짜 가서 폰 케이스나 하나 대충 사주면 되지. 뭘 또 이래 정성스럽게 선물을 사고 있노. ”

 “ 닥치라. 어느 미친놈이 서른 살 생일 선물로 폰 케이스 사주는데. ”

 

 아무튼 이런 식이었다. 폰 케이스 사줬으면 진짜 웃겼을 것 같아서 아직도 혼자 낄낄거리고 있다. 민규나 미미에게 쓰는 돈은 언제나 아깝지 않아서 이런 장난도 칠 수 있는 거다. 두어 시간 백화점 도니까 진이 다 빠졌다. 부산에 막 도착한 민규는 미미의 엄마, 이모가 내 주신 생일상 한 상을 다 비웠고, 민규 덕분에 우리도 갈비찜을 왕창 먹었다. 민규는 양력으로 2월 3일, 음력으로 1월 4일생인데 정월달 초나흘에 태어나 외로움도 많고 사는 것도 팍팍했지만 우리 다 같이 친구가 된 후로는 잘 살고 있다. 민규가 생일 케이크를 불면서 무어라 소원을 빌었는진 모르지만 꼭 그 소원 이뤘으면 한다. 그 애는 누군가 소원을 들어줘도 된다. 그럴만한 자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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