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웅을 친 후의 느낌은 아직 생생하다. 6년 전, 처음 대신 할아버지를 모실 적 나 역시 그동안 내 몸을 드나들던 잡귀, 원한 있는 조상, 지저분한 것들을 벗겨내고 오로지 할아버지만 받기 위해 군웅을 쳤다. 긴 시간 천황 잡이 선생님은 형형색색의 깃발로 내 몸을 쓸고, 새끼줄처럼 꼬인 오색 천으로 내 몸을 닦고, 신장 칼로 내 몸을 찌르고, 마침내 군웅 밥 속에 몸을 처박고 먹으면서 내 몸을 드나들었던 잡귀가 얼마나 무서웠고, 악독했는지를 다 보여주셨다. 군웅이 끝난 후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달리 보였다. 보통 사람은 이렇게 걷고, 먹고, 마시는 거냐고 물었다. 발에 닿는 바닥의 느낌이 울렁이지 않았다. 전류가 흐르듯 찌릿하던 심장 통증이 없어졌다.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이런 기분으로 사람이 사는 거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굿은 군웅을 치고 나면 앞으로 모실 신들을 들인다. 나는 내려온 신들 가운데 여자가 없다. 대신 자리에 앉을 신도 대신 할아버지, 장군님, 업 대감 할아버지뿐이다. 무속인들은 법당에 다 같은 신을 모시지 않는다. 우리는 무속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각자의 조상이 다르고 뿌리가 달라 어떤 신을 모시게 될지는 제각각이다. 어떤 무속인은 동자, 선녀 행세를 하고, 누구는 할머니 행세를 하고, 저마다 말씨와 점 보는 방식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조상에서 온 신뿐만 아니라 천상에서 연고 없는 선녀나 동자, 장군이 올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무속인 천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천상에서 신이 온 경우는 기도 공덕이 엄청나 천상과 지상을 잇는 다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브런치 ‘ 미미에게 ’ 시리즈 주인공 미미가 천상에서 선녀가 온 경우며, 미미는 어머니가 한 곳에서, 십 년간, 삼천 배를 백 번도 더한 집안이라 가능했다. 결국 신은 집안에 따라 천차만별인 셈이다.
또한, 제자에게 들어오는 신들은 그 이름과 역사가 분명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나의 몇 대 조상이며, 어떤 공부를 통해 신으로 왔고, 살아생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적확히 주장하며 들어온다. 그래서 무속인은 당신의 조상, 조상의 행적, 조상 중 누가 신으로 들어와 어떤 식으로 삶을 전개할지 알고 있는 게 맞다. 신을 모시며 타인의 앞날을 말하고 밝히게 되었으면 그 정도 사명감쯤 있지 않으면 이상한 법이다.
신굿은 평생을 함께할 대신을 모시는 일인 만큼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다. 신굿은 굿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3대제단인 대관령 국사당, 태백산 천제당,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제자로서의 삶을 나라에 고하고, 집안 뿌리인 본주 본산을 돈다. 일련의 과정에 거슬림이 없고, 깨끗하고 맑은 상태가 내내 이어져야만 그저 애동 제자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 탄생에 필요한 인력과 인력 각자의 바른 마음은 필수다. 그러니 제자 하나 태어날 때 나라가 운다고 하는 것이다. 속세를 버리고 살아야만 겨우 살아지는 서글픈 운명이 여럿 모여서는 인간 욕심은 다 버리고 신도 귀신도 보는 생과 사의 중간서 살아갈 서글프고 이상한 운명을 또 하나 낸다고 하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삶이 거부되는 것이냐. 거부하고 살 수 있었음 우리 중 누구도 제자 안 했을 것이다.
나는 6년 간 제자 생활하면서 손님 칠 천명은 본 것 같다. 대략 세어보니 그렇다. 그중 신 받아서 제자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신이 있어도 세존(신주) 단지, 사업 대감 모셔서 해결될 집이지 ( 신주나 사업 대감 모시는 일은 후편에 자세히 쓰겠습니다. ) 인생 내걸고 제자 할 사람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자 하나 낼 때 나라가 운다고 할 만큼 드물고, 힘겹고, 진 빠지는 이 길은 요즘 세상서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제자 팔자 아닌 이가 제자 길에 들고, 그가 또 다른 제자를 내고, 말 몇 마디로 편하게 벌 수 있을 것 같아 제자가 되고, 신도 없는 제자가 겁도 없이 굿을 했다가 죽고, 남의 돈을 떼먹은 무속인이 감옥에 간다. 보이지 않는 걸 부린다는 사실이 사기의 수단이 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6년간 수천 명의 사람을 보면서 신굿 해 줄 집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내 인생 신에게 내걸고 한 평생 인간 욕심은 모르고 신의 본부로만 살아가는 지독한 팔자, 제자 되고 무당 될 지독한 팔자, 내 손님 중에는 없었다. 하늘에 걸고 맹세할 수 있다.
어제 대보름 맞이 용왕 기도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경주 문무대왕릉이에요. 미미와 민규와 다녀왔어요. 민규는 자기 가족 빌어주러 갔고, 저와 미미는 우리 각자와 신도님들 빌어주러요. 어제 밤 10시에 가서 기도 하고, 집 오니까 새벽 6시였어요. 민규는 첫 차로 대전에 갔고, 저와 미미는 법당 기도도 마치고 방금 글 한 편을 뚝딱했네요.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