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중 누구도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지식이 많다 한들 인간사 중심을 정확히 관통하는 정의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무속인만 신이 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고, 인간은 세상을 다 알 수 없으며 누구나 우연과 기적을 마주하고 산다면 어찌 신이 무속인에게만 작용하고 있겠냔 말이다. 삼라만상의 이치가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맹자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있을지 모른다. 그와 비슷하게 무(巫)교에서는 무속인만 신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속에는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있고, 이 조상신 중 대신으로 들어오는 이가 후손을 무속인 만들어 점을 친다고 말한다. 또한 대신이 아닌 조상신이 있다는 것, 그러한 조상신이 인간을 따라다닐 수 있다고도 말한다.
대신이 아닌 조상신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세존(세준)할머니, 대감 할아버지, 동자, 선녀, 장군이 있으며 그들도 살아생전 모습과 어떻게 임종을 맞았는지, 죽어서 어떤 공부를 했는지에 따라 명칭이 세세하게 달라진다. 우선 세존(세준)할머니부터 보자. 세존할머니는 살아생전 기도를 많이 한 할머니로 집안의 복록과 안정을 담당한다. 이들은 기도 공덕이 깊어 신으로 들어올 적 투명할 정도로 맑고 깨끗하게 들어온다. 보통 삼각뿔 모양의 모자를 쓰고 비녀로 쪽을 졌다. 이분들이 살아생전 어디서, 어떻게 기도를 했느냐에 따라, 어떻게 임종을 맞았고 임종 후 어떤 공부를 했는지에 따라 명칭이 미세하게 달라지는데 세준 할머니면서 칠성 세준 할머니, 세준 할머니면서 불사 세준 할머니로 달리 불릴 수 있다. 이 외에도 세준 할머니의 명칭이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고 그것은 집마다 할머니의 행적 달라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친구 민규로 예시를 들어보자. 민규는 세준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우리 민규가 모시고 있는 세준 할머니는 살아생전 기도를 많이 하신 데다 장사 수완이 좋아 큰돈을 벌었다. 고로 세준 할머니면서 업 할머니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를 모실 때는 집안의 복록과 안정을 일으키고 민규가 하는 사업까지 불릴 수 있는 형국이 된다.
세준 할머니는 가까운 인척이 아니다. 먼 윗대의 기도 공덕 깊은 할머니다. 나는 점을 볼 때, 세준 할머니가 따라다니는 손님이 오면 정확히 몇 대에서 어떤 기도 공덕을 세운 할머니가 오신다고 점을 친다. 그래야 손님이 헤매지 않는다. 세준 할머니는 단지에 쌀을 넣고 그 위에 명과 복을 담당하는 명주실로 머리카락 형태를 만들고, 삼각뿔 모자를 얹어 장롱 위에 많이 모신다. 세준 할머니가 있는 일반인은 대신이 있는 무속인처럼 점이나 미래를 보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감이 좋거나 꿈이 잘 맞거나, 흔히 말하는 신기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세준 할머니의 성격에 따라 꿈을 아예 안 꾸기도, 신기라고는 코빼기도 모르는 것처럼 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신기가 있다고 무속인 되는 게 아닌 셈이다. 신기는 대신뿐만 아니라 세준 할머니, 대감 할아버지, 장군, 하물며 동자, 선녀만 있어도 신기 있다고 할 수 있는 맥락이다.
세준 할머니가 따라다닌다 해서 이 할머니를 모셔야 할 집과 아닌 집이 또 나뉜다. 그건 할머니가 어떤 식으로 들어오며 어떤 성격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모셔야 할 집을 예로 들어보자. 세준 할머니가 있고, 이를 모셔야 할 집은 모시지 않으면 집안의 풍파가 분다. 보통 가정의 균형이 깨지는 풍파다. 사이가 틀어지고, 화합되지 않으며 다투고 싸운다. 가정의 불화가 발생하고 병명 없이 아픈 사람이 생긴다. 돈을 벌어도 모이지 않는 형국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풍파가 발생하고 지속될지는 세준 할머니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풍파가 있다고 해서 꼭 세준 할머니가 일으킨 풍파가 아닌 집도 있음을 함께 밝힌다. 이제, 세준 굿으로 넘어가 보자. 나는 세준 굿하면 지금 영국 여행 가 있는 민규가 생각난다. 민규 세준 할머니는 성격도 별나고 고집도 세고 말도 많다. 별난 성격만큼이나 후손 사랑이 끔찍해서 민규는 세준 굿해서 할머니 모시고 사업이 승승장구했다. 조상 덕 있는 놈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는 말처럼 민규는 최근 한 달 동안이나 외국에 있을 예정이다. 어제는 토트넘 경기도 직관했다. 물론 민규는 할머니 모시고도 조상 덕 더 누리려고 제사도 잘 지내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