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에 신 받은지 7년 됐다니 !

by 이윤우

신을 받은 지 7년이 되었다. 7년 되려면 보름 정도 남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되었다는 게 기분을 말랑말랑하게 .. 만들어서 .. 2018년 음력 2월 29일에 신을 받았는데, 오늘로 2025년 음력 2월 15일이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그날을 다시 봤다. 설하 언니 한복을 빌려 입고 굿당에 앉아 있었는데 같은 키에 몸무게는 15kg 정도 덜 나갔다. 원래는 20kg 정도 덜 나갔는데 신을 받기 전 몇 달간 5kg가 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물이 좋긴 매한가지겠지만 지금이 훨씬 더 좋다. 적당히 무게감 있는 사람이, 혹은 덩치가 있는 사람이 어느 조직에서건 힘을 발휘하기 좋다는 사실을 웬만큼 알기 때문이다. 마른 사람이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딱 보기에 적당히 두둑하고 맷집 있어 뵈는 사람이 주는 안정감, 그런 걸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신병을 정말 지독하게 알았다. 신 받은 사람들 이야기야 매한가지겠지만 정말 지독했다. 나는 그 흔한 점집 한 번 가본 적 없다. 꿈에 할아버지가 보이든, 지진이 나든, 온 동네를 삼키는 해일이 일든, 눈에 귀신이 보이든, 아무튼 그거 다 정신병이라고 믿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앓는 이 증상을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다는 고집이 있었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삶을 너무 오래 살면 그렇게 된다.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무당 될 걸 알았다느니, 뭐 어떻다느니 하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고 아무도 안 믿는 동시에 내 증상을 누구도 설명해낼 수 없다고 믿었다. 흔하게 조현병, 우울증, 어쩌고 병명 갖다 붙이면 그만이겠지만 그러한 병명을 능가하는 무엇이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고 무슨 수를 써도 고칠 수 없는 증상을 너무 오래 앓으면 그렇게 된다. 그러다 설하 언니를 만나고, 난생 처음 본 점에 옳다구나 싶어 신을 받게 된 .. 이 기가 막힌 서사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나는 이제 아프지도 않고,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낸다.


7년 열심히 올 수 있었던 데는 언니 공이 누구보다 컸다. 그래서 언니 이름 빌려서 책도 내고, 언니 전생 빌려서 드라마 대본도 쓴다. 우리 아버지는 대학에서 유명한 수학 천재였다가, 사업으로 큰돈을 만진 사람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라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인데, 나 고치려면 할아버지 모셔야 된다고 아빠 면전에 설하 언니가 말해준 덕에 신 받았다. 대통령이 와도 납득 안 되면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앞뒤 안 맞는 놈 만들어 버리는 게 우리 아빠다. 그게 우리 집 유전자다. 네 문제가 뭔지 모르면 어떤 판을 세워서라도 네 문제를 깨닫게 만드는 게 우리 집 유전자고, 이렇듯 정치질에 타고난 우리 집안 피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속 앞세워 무너뜨린 게 설하 언니였다. 내가 이런 서사를 대충 조선에 빗대서 대본으로 쓴다고 하면 .. 나는 이게 너무 재밌어서 미칠 것 같다. 내 얘기를 쓴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게 아니다. 나는 어떤 판을 세워서라도 모두가 재밌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글에 써서 아주 말뚝을 박아 버려야 된다.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쓰게 말이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라 너무 흥분 안 하고 이만 줄인다. 부러 미래를 점치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 다하면서 앞으로도 잘해야겠다. 점(店)이 힘이 있을 때는 듣는 이가 내 말을 믿어 줄 때다. 세상 일이 다 그럴 것이다. 내 말 안 듣기로 마음 먹은 사람에게 뭘 해줄 수 있으랴. 그저 내 말 잘 들어주고, 내 힘 되어주는 사람들 생각하면서 앞으로 잘 가면 되는 게 인생일 성 싶다. 7년 하고 그거 하나 배운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