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차피 거짓말하겠지만.

by 이윤우

세상이 어떻다고 해서, 부모가 어떻다고 해서, 혹은 살아온 환경이 어떻다고 해서, 그게 나쁜 마음을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은 나쁜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반항해야지, 어른 말을 안 들어야지, 삐딱해야지, 크고 작은 사고를 쳐야지, 같은 것만 나쁜 마음이 아니다. 가족이 나를 소홀히 했으니 누가 뭐라 하건 욕심을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야지, 그 욕심에 배반하는 것은 천륜이라도 무시해야지, 세상이 내게 모질었으니 이득을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쯤이야 용서받겠지, 어쩌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 하는 것 역시 잘 포장된 나쁜 마음이다. 핑계가 있다고 해서 나쁜 마음이 좋은 마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영영 까먹을 기세다.

이들은 연기자다. 언제든 불쌍한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 불우한 서사를 바탕 삼아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어 마치 이 자리에 온 듯 참된 인간을 연기하거나, 나는 정상이나 세상이 나를 비정상으로 살게 했다는 듯 앞뒤 안 맞는 변명을 장전 중이다. 나는 이들 덕분에 세상이 망했다고 본다. 부모가 죄 없는 자식 죽으라고 입 안에 농약을 부은 것도 아니고, 아무 죄 없는 자식 맞아 죽으랍시고 학교도 안 보내고 방 안에 가둬 뚜드려 패기만 팬 것도 아니고, 부모 눈 귀 속여가며 밖에서 나쁜 짓이나 하고 돌아다니던 게, 폭력은 죄라는 말이 만연해지자 왜 말을 안 듣냐 혼내던 부모랑 다툰 일로 폭력을 당했다느니 하는 걔들 말이다. 공부 좀 잘한다고 부모 알기를 우습게 하는 쪽도 똑같다. 대충 맥락은 이렇게 잡을 수 있겠지만 걔들이 부모 죄인 만들고 잘 사는 세상 지옥 만든 방법은 여기 다 적을 수도 없을 것이다.

걔들은 자라서도 세상 핑계를, 부모 핑계를 댄다. 이렇게나 돈과 명예에 목숨 거는 게 어렸을 적 부모가 나를 소홀히 키웠기 때문이라느니, 사회 시스템이 불합리해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 되는 게 맞다느니, 이렇게 가슴 아픈 서사를 둔 내가 이런 인생을 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식으로 마음먹고 자기 반대 편에 있는 듯한 뉘앙스만 풍겨도 적으로 둔다. 그러니 세상이 안 망하고 배기겠냐는 말이다. 이들이 도망 다닌 통에 다른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진다. 이들은 본인 앞에 도사리는 역경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서 버리듯 떠나는데, 이들이 버리고 떠난 걸 누군가는 치우고 산다. 부모가 마음에 안 들면 부모도 버리고, 자식에게 문제가 있으면 자식도 버리고, 친구도 불리하면 버리고, 나름 핑계는 있어서 깜빡 속아 넘어갈 것 같다.


대체 왜 당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당신은 핑계가 많은 사람이다. 핑계가 없으면, 도망칠 구석이 없으면, 퇴로가 막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과부하 걸린 로봇처럼 버둥거리기만 한다. 어서 일어서서 함께 가자면 샘을 낸다. 나는 주저앉아 있는데 왜 너는 서 있냐는 식으로. 그게 아니라고, 진심이라고 하면 무시받는 듯 느껴 창자가 뒤틀린다. 본인이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상황에 그렇게나 욕심을 낸다. 대체 그 ‘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 뭐라서 그렇게나 한이 되어 있냐는 말이다. 서로서로 약점은 알지만 얼추 모른 척하고, 마음과 다른 표정으로 연기나 해가면서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사회적 인맥은 대단해 보여도 내 진정한 친구 하나 없이, 어떤 성공이나 지위만이 인생의 정답인 것처럼 부모, 형제, 자매, 친구, 연인까지 팔아서 사는 게 무슨 인생이냐는 말이다. 진짜 그게 그렇게나 좋냐? 뻔히 타고나기를 귀태가 줄줄 흐르는 게 좋으면서 그런 걸 쫓으면 사회적 약자 행세 못하게 될까 봐, 네가 설립한 이미지에 위배될까 봐 일부로 이상한 것만 골라 입는 게? 너 진짜 그런 너를 사랑할 수 있어?


어차피 거짓말하겠지만, 당신들이 거짓말하는 건 나도 알고 당신들도 아니까. 스스로 그런 사람 아닌 것 같으면 영영 몰라도 된다. 50살 넘으면 친구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질 거라 괜찮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런 글은 이름 나는 글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