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죽을 각오로 하면, 어떤 벼랑에 다다르면 바뀐다고 믿어 왔는데 요즘 몇 가지 추가됐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은 벼랑만 피해 다닌다는 거다. 저렇게 사는데, 제 마음 줏대 하나 잡는데도 수가지 핑계가 붙어 여태 그러고 사는데 죽지 않는 이유가 뭘까 봤더니 징징거리다가도 기가 막히게 벼랑에만 다다르면 몸을 감싸고 숨는다는 거다. 그래서 죽진 않는 거였다. 징징거림이 도가 넘어 조금 더 하면 정말 버려지겠구나 싶어 말을 아끼고 몸을 숨겨온 거다. 그러니까 저런 욕심으로 사는데도, 고집 하나도 못 꺾어 그러고 사는데도 죽진 않는 거였다. 이렇듯 세상에는 무슨 수를 써도 바뀌지 않는 종자가 있는데, 그게 이런 쪽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안 거다. 내가 어리석었다.
애당초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종자라도 붙잡고 화를 내 온 것은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또 살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요즘은 입이 안 떨어진다. 바른 말하면 도망가고, 대충 우울증 걸리고, 어떻게든 기분 나쁜 거 표 내려고 분위기로 흘리는데 이젠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에 뱄다. 지금 이 글도 진도 빼기가 무척 힘든 게, 명징하게 묘사해 가슴에 대못을 박아주고 싶어도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걸 알아 쓰는 재미가 없다. 쓰는 이가 재미없으면 읽는 이도 티가 난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기도에 매진한다. 기도는 공부와 같아서 나 매진 중이요 말 갖다 붙이기도 죄송스러울 만큼 무궁무진한데 하면 할수록 화를 잡고 볼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짓게끔 한다. 아직 멀었지만 대충 그렇다. 나 벌써 7년 된 제자예요, 말은 하지만 제자 나이로 치면 이제 막 유치원 졸업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신을 갓 받은 제자가 점 제일 잘 본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신이 꺾이는 게 아니다. 신도 현실을 접하고, 보고, 배우면서 더욱 깎이고, 제련되는 게 이 길이다. 제대로 세월을 먹은 제자는 애동 때보다 말을 가려 할 뿐만 아니라 품위와 존중을 익힐 수 있다.
나는 영화보면서도 공부가 종종 됐는데 영화 관상에 그런 말 나온다. ‘ 그때 그 역모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 얼굴 중에 뭐 대단한 상이라도 있던 줄 아냐고. 양반, 상놈, 공부할 놈, 공부하다 말 놈, 뭐 어떤 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 두루두루 섞여 있었을 뿐이고, 그대들의 역모가 성공한 건 그저 높은 파도를 올라탔기 때문이라는 말. 그 말이 가끔 생각난다. 그 말은 어느 시대든 관통해내는 말이다. 타고나기를 대단한 사람은 몇 없고, 웬만큼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람은 높은 파도를 올라탔을 때 얼마든지 올라갈 수도, 무서운 폭으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걸 이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을 마주 보고 뜯어 고칠 생각은 진즉 버렸고, 세상은 보이는 대로 판단하겠다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서슴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시대다.
나는 세상이 꼼짝없이 망했다고 본다. 세상은 정말 망했다. 당신도 당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당신의 친구가 어디로 향하는지, 가족이 어디로 갈 것인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도 몰랐겠지만 이상하리만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당신들의 업보다. 주변을 들여다보지 못한 업보, 당신 편한대로 생각해 온 업보, 이제 그 업보를 차례로 받으리라 본다. 많이 억울할 것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이 억울함은 욕심을 이루지 못한데서 온다는 걸, 네가 피해자라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꽉 명심하고 견디면 된다. 당신들은 어차피 죽지 않을 것이다. 벼랑을 피해 다니는 게 당신들의 특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