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으로 첫 차가 생겼을 때 알았다. 앞으로 운전할 일이 무진장 많을 거라고, 내 차는 나의 발이 될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정말 많은 사람의 발이 되어줄 거라는 걸 말이다. 그 길로 매년 3만 킬로를 탔다. 차는 전국의 기도터로, 가족의 병원으로, 동네 어른들의 크고 작은 심부름을 해내러 달렸다. 나는 운전을 설하 언니 아버지께 배웠는데 어쩌다 비 오는 날 연석에 박은 것 말고 단 한 번도 사고를 낸 적 없다. 차와 합이 잘 맞은 덕에 많은 걸 해냈다. 줄곧 기도터에 갈 수 있어 성불을 봤고, 가족과 친구의 심부름을 해준 덕에 신뢰를 얻었다. 우울할 때마다 도망갈 수 있었다. 앞으로 차 없이 살 일은 내 인생에 없다.
내 인생은 이렇듯 없이는 못 사는 것들이 많은데 차와 가족, 친구들, 모시는 할아버지, 장군님, 그런 게 다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그들은 모두 나 하나 잘되라고 거기 있다. 무엇에게도 지지 않게 만들어주고, 열 걸음 앞을 보여주고, 열 걸음 앞을 봐도 자만하지 않게 잡아주고, 길을 밝혀주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준다. 이 모든 건 아주 어렵게 내게 왔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고집을 피우지 않는 용기, 억울해 않는 마음,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배우고서야 내게 왔다.
내가 이런 걸 배울 때 마찬가지 내 친구들도 함께 배웠는데 덕분에 우리는 세상이 흉흉해도 어떻게든 버티고, 무엇에게도 긁히지 않고, 남들의 뻔한 수를 미리 읽고 상대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정말 지독하게 힘든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불편한 사람 안 만나고, 뒤에서 헐뜯고, 도망치고 다니면서 도망 아닌 척 그러고 살겠지만, 우린 남들이 본인 스스로 마주 보지 않을 때 마주 본 덕에 비겁하고 허접하게는 안 살아도 되는 거다.
이런 세상은 결코 혼자 누려서는 안 되고 내 말에 끄덕이는 사람에게 응당 나눠줘야만 한다 생각하는데, 그게 또 제자가 하는 일이다. 이렇듯 신념과 직업의 맥락이 맞는 것도 내게는 큰 행운이라 볼 수 있겠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죽을 고생을 해서라도 원하는 궤에 올라갈 수 있다면 운 좋은 게 맞다. 혹자는 죽을 고생도 안 하는데 원하는 건 많아 영영 도달하지 않는 기분에 세상 탓, 남 탓이나 하고 사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 다행이다. 제자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지만 세상 망해가는데 지켜주는 신이 있어 다행이고, 언제든 함께 짐 들어줄 가족과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 탓, 남 탓은 안 하겠다 다짐한 덕에 세상이 선물해 준 게 틀림없다.
비가 많이 온다. 요 며칠 달린 거리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을 두 번 왕복한 정도다.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내려 새하얗게 앞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푹 퍼진 몸으로 집에 오니 신도님이 보내주신 멋진 한과 한 박스가 있었다. 그 맛에 또 산다. 과자 보내주신 신도님은 많은 짐을 지고 계신데 내가 그의 멋진 친구가 되어드려야겠다. 나는 이렇게 또 사람 한 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