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해 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인생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모두가 일하는 것말고도 스스로를 브랜드화(?) 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내가 괜스레 이상하고 뒤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전혀 갖고 갈 필요가 없다는 거다. 오로지 출근과 퇴근으로만 일상을 꽉꽉 채워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내 일상을 불특정다수가 볼 걸 감각 하면서 뭔가를 해내거나, 연기하거나, 계획하는 게 얼마나 많은 체력을 요구하겠냐는 말이다. 그런 것까지 해내는 남을 보면서 나는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고,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요즘 사람들이 내게 갖고 오는 고민 중 상당수가 노력하지 않는 내가 싫고 답답하다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도 바빠 죽겠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눕기 바쁜데 여기서 무슨 노력을 더 하느냔 말이다.
일상의 밀도를 꽉꽉 높여 최대한 많은 걸 해내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전혀 대단하지 않은 게 아니다. 더한 노력도 실은 운이 받쳐 줘야 가능한데,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일 운, 투지와 열정을 잃지 않는 환경에 놓일 운, 그런 운들이 뒤따를 때 노력도 맘 편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간혹 몇몇은 아주 특이한 행보를 보이는데, 가령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얼마든 해낼 체력이 있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남을 배려하느라, 다른 사람 비위를 맞추느라, 나로 하여금 자격지심을 느낄 남을 배려하느라 일부러 속력을 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이들이 바로 누군가의 귀인이다. 소싯적 점볼 때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내게 올 귀인을 기다리기 보다, 당신이 누군가의 귀인이 되어주는 건 어떻겠냐는 거였고, 그걸 몸소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는 말이다.
나 잘난 것만큼 마음 편한 게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어딜 가나 드물겠지만, 아주 감사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잘남을 있는 그대로 내세우지 않고, 바득바득 용을 써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거 말고, 바보라고, 어리석다고 얘길 들어도 다른 사람과 속력을 맞추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아주 느리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두고두고 그 복을 돌려 받을 것이다. 가장 힘들 때 일으켜 세우는 사람을 만나고, 가장 아플 때 돌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앞 뒤가 꽉 막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여기가 길이라고 알려주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들이 남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용당하지 않는 사람으로 늙어갈 것이다.
올해는 그 사람들이 상을 받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