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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하고도 달콤한 양파 꿈

by 이윤우

어제는 양파를 외상 하는 꿈을 꿨다. 언니와 나란히 걷다가 들어간 마트에서 한 손에 다 잡히는 작은 양파를 외상 했다. 나는 양파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치 않아서 언니에게 묻고, 잘 안 하던 해몽도 찾아보고 그랬다. 한참 찾다가 남이 써준 해몽은 다 의미가 없겠거니 싶어서 문득 양파 효능을 찾아봤다. 해독, 항암, 항산화, 그런 말들이었다. 아마, 오늘 배탈이 날 걸 예상한 누군가가 내 손에 양파를 쥐여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글을 쓰기 전만 해도 배탈이 심해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다. 다행히도 한 글자 치자마자 통증이 싹 사라졌다.


양파 표면에 방정식 몇 개가 작게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뭐였을까. 방정식 한 개를 풀 때마다 껍질이 하나씩 벗겨지는 신비의 양파였을까. 껍질이 다 벗겨지면 그 속에 인생을 피게 해주는 씨앗이라도 들어있던 걸까. 며칠 전에는 법당에 앉아 소원을 빌었다. 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양파를 꿈에 주셨으니 뭐든 되리라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한 번 더 빌어봐야겠다. 그때는 대쪽 같다며 대파를 주실지도 모를 일이니까. 채소 꿈은 좋은 꿈이거나, 태몽이거나 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아이를 밸 일은 절대 없으니까 좋은 꿈이라고 믿어야 한다.


언니의 고양이가 아프다. 유전병이란다. 심장이 비대해져 혈류가 잘 흐르지 않는 고약한 질병. 고양이는 할 줄 아는 걸 다 했다. 말을 못 한 대도 고양이 말로 치자면 말도 할 줄 알고, 좋고 싫은 것도, 배고픔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다 얘기했다. 언젠가부터는 고양이가 마음으로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 입꼬리를 위로 휘어 보이는 회색 고양이. 수의사 선생님은 고양이도 꿈을 꾼다고 했다. 너도 네가 믿는 신께 심장병에 좋은 특효약을 받았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늠름해지게, 오래오래 함께 늙어갈 수 있게.


배고픈 고양이에게 간식을 먹이는 것만큼 든든한 일이 없다. 돌기가 난 작은 혓바닥으로 간식 주둥이를 마구 핥을 때 나는 그 애 뱃속이 따뜻해지는 상상을 한다. 자기 몸보다 50배는 큰 사람에게 의지하는 건, 거대한 생물에게 복종한다는 말로는 아쉬운 끈끈한 유대가 있는 것 같다. 지난밤 나를 덮쳤던 거대한 꿈을 저절로 믿게 되는 것처럼. 할 수만 있다면 양파도 나눠 먹어야지. 고양이는 양파를 먹으면 큰일이 난다니까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도,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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