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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비 Aug 21. 2023

자라온 어린 시절이 오늘에 미치는 영향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일과 그럼에도 견뎌온 일들을 듣고는

왜 그 상태로 몇 년을 그렇게 버텼냐는

왜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 못했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대답을 하기엔 너무 복잡한 것들이 엮여있어

한마디 대답으로는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실 내가 회사에서의 상황들에 그토록 무력했던 이유는,

어릴 적의 경험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

어느 순간 번개를 맞듯 깨닫게 되었다. 


어릴 적

도움의 요청을 구했을 때

그 요구들이 좌절되었던 경험이다.








자라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에는



1) 중학교 1학년 때,

덩치가 큰 한 아이의 주도로 따돌림을 당했는데

학교에 있는 동안 그 시간이 매일 무서웠고, 방학에도 내내 불안에 떨 만큼 너무 괴로워서

결국 용기 내어 엄마한테 전학 보내달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전학은 그냥 할 수 있는게 아니야~"하시며 전학을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전학이 쉬울 거라는 생각에 전학을 보내달라고 한게 아니라

매일 괴롭고 힘들고 무서워서 그런거였다.


나는 그대로 오롯이 따돌림을 당해내야 했다.

그 당해내는 긴 시간동안

나는 아마 뼈속까지 알게 됐을 것이다. 


'어른들은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나의 문제를 말한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꺼야'

 

다 큰 어른이 된 최근이 되어서야 왜 그때 전학을 보내주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을 때..

엄마는 그게 너한테 그렇게 큰 일인지 몰랐고, 

늘 일어나는 그저 어린애들의 일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했다.






2) 조금 더 어릴 적으로 가보자면,


초등학생 저학년쯤 되었을까

책상 밑으로 들어가 있어도 자리가 그리 좁지 않았으니 그쯤 되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속상하고 억울한 상황이었고

내 방 책상 밑으로 들어가 나를 봐달라는 듯 울면서 소리쳤는데

밥을 먹어야 하는 식사시간이었는데

엄마아빠는 훈육이라 생각했는지 들어주지 않았다.


나의 감정은 그렇게 수용되지 못했다.






3) 중학생 때 하룻밤을 집에서 홀로 보냈던 경험


엄마아빠가 여행인지 어딜 가셔서

집에서 혼자 잠을 자야 하던 주말이었다.


당연히 중학생 정도니 라면도 끓일 줄 알고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을 알아서 챙겨 먹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그리고 좀 더 세심하게 챙기지 못할 만큼 급한 일이나 경조사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어린 나는 엄마아빠가 어디에 갔는지, 왜 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엄마아빠가 오늘 집에 없다는 사실만 알았던 것 같다.


하룻밤을 홀로 보내야 하니 내심 신이 난 것도 있었다. 하루종일 티비를 볼 수 있었으니.

그러나 밖이 어두워지고 저녁이 되면서 그 신나는 마음은 혼자 있어 무서운 마음이 되었다.


배는 고팠고 어떻게든 채워야 했으니

삼시 세 끼를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끓일 줄은 알지만 잘 끓이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마지막 세 번째 끼니에서 불어 터진 라면을 먹으며 토를 해버렸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한동안 그 라면 트라우마로

라면을 먹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문제)








이런 기억들 속에서 내 안에서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주 양육자로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으니

외부의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믿음이 생겨버렸고


그런 잘못된 믿음들은 아주 굳게 굳어서

내 세상 속에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겪은 무례하고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그저 그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욕구가 좌절된 경험

감정이 묵살되는 경험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고 무관심했던 기억 속에서

나는 그게 세상이라 믿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들이 그 일들을 전부 다 설명해 줄 순 없지만

간단하게는 이렇게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









기억나지 않는 유아기를 제외하고는 살면서 부모님에게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린 적이 거의 없었던

사춘기조차 없었던 나는 정말 성실하고 착한 아이였기에

몇 번의 강렬한 기억에 부모님한테 아주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 그때의 엄마아빠가 미운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기에,

그때의 엄마아빠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기에,

엄마아빠의 양육방식이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좋은 기억들도 많기에

자라온 환경을 전부 다 부정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의 이야기를 엄마아빠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 시절의 엄마아빠의 생각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듣고 싶을 뿐이다.


그때의 엄마아빠의 생각들을 들으면

내 마음은 스르르 녹아내릴 것이기에

마음을 나누는 일의 힘을 알기에..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정말이지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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