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잊어버린 당신에게

한강 작가의 <눈물상자>

by 유옥

한가로이 도서관에서 책장을 둘러 보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 2024년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그런데 그 이름 옆에 적힌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문구를 보자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한강 작가가 동화를 썼던가? 내가 아는 그 한강 작가가 맞나?


한강 작가의 <눈물상자>




책의 제목은 <눈물상자>. 다행히 우리가 아는 그 한강 작가가 맞았다.

안그래도 최근 동화라는 장르에 빠져있던 난 한강 작가가 동화를 썼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책을 펼쳤다.

70페이지 가량의 동화. 저자 서문에는 "눈물은 모두 투명하지만, 그것들을 결정으로 만들면 각기 다른 색깔이 나올거란 생각을 곰곰이 더듬다 이 이야기를 썼다"고 적혀 있었다.


<눈물상자>는 '눈물단지'라고 불린 한 아이가 '눈물을 수집하는' 한 아저씨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아이는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이른 봄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한 마리를 보고는 오후가 다 가도록 눈물을 흘렸고, 잠들 무렵 언덕 너머에서 흘러든 조용한 피리 소리를 듣고는 베개가 흠뻑 젖을 때까지 소리없이 울었다.
하루 일에 지친 엄마가 흔들의자에 앉아 쉬는 저녁 무렵, 길고 가냘픈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진 걸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키우던 개가 열 시간 동안 진통을 하며 새끼 여섯마리를 낳는 걸 지켜본 뒤로는 개들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눈동자는 칠흑같이 검었고, 물에 적신 둥근 돌처럼 언제나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한강 작가 <눈물 상자> p6


이처럼 어린 나이에 남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던 아이.

하지만 그런 탓에 부모는 늘 걱정했고 친구들은 아이를 멀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차림을 한 아저씨가 아이에게 다가온다.

너로구나, 특별한 눈물을 가진 아이가.


으스스한 옷차림과는 달리 쓸쓸하지만 따뜻한 웃음을 지니고 있던 아저씨.

아저씨는 가방 안에 든 큼직한 검은 상자 안에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눈물들을 보여준다.

양파 냄새를 맡았을 때 나오는 눈물부터 화가 몹시 났을 때 흘리는 주황빛 눈물, 거짓으로 흘리는 회색빛 눈물, 잘못을 후회할 때 흘리는 연보랏빛 눈물, 기쁨에 겨워 흘리는 분홍빛 눈물까지.


그중 아저씨가 갖지 못한 눈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눈물을 아이가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바로 순수한 눈물!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


하지만 아이는 아저씨에게 눈물을 보여주지 못한다. 러면서 아이가 순수한 눈물을 흘릴 때까지 아저씨와 함께 여정을 떠나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한강 작가는 <눈물상자>란 동화를 대학로에서 본 한 어린이극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한다.

<눈물을 보여드릴까요?>라는 제목의 공연에서 한 남자가 검은 상자안에 담긴 커다랗고 투명한 눈물방울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었던 장면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우리는 흔히 슬플 때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보니 대개 눈물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동화 속 아저씨가 보여준 것처럼 여러 종류의 눈물들이 존재한다. 슬픔의 눈물뿐 아니라,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 안도와 감동, 혹은 오래 버틴 끝에 흘러나오는 눈물도 있다.


그중 아이가 흘리는 눈물은 특별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줄때 아이는 망설임 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 순수한 눈물을, 나도 흘려본 적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흘렸던 눈물은 언제인가요?

혹시 현실의 무게에 눌려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그렇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때때로 예기치 않는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는 한강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언젠가 잊혀졌던 눈물이 터져나오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온전히 받아들여 눈물로 스스로를 구해주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삶의 기행 끝에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