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
Zoom in
: 카메라가 (줌 렌즈를 써서 피사체를) 확대/축소하다
출처: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Zoom in' 한 사진은 촬영할 때 확대하고 싶었던 장면입니다.
그러나 항상 단렌즈 밖에 없었습니다.
이글에 싣는 장면들은 필자의 얇은 동공으로 줌인한 순간들을 다시 편집한 사본들입니다.
원본사진은 글 하단에 있습니다.
링크 : 첫 번째 글 - Zoom in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
타지에서 고향이 경주라고 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아 어릴 때 수학여행 갔었는데!"
"경주는 무덤 때문에 분위기가 특이한 거 같아요."
"혹시 한옥에서 살아요?"
그러면 난 꼭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어요.'
'어릴 땐 무덤에서 뒹굴고 학교에서 소풍도 갔어요. 왕릉 앞에서 김밥 먹고 보물 찾기를 했는데 어째 무섭지도 않았나 싶어요.'
'한옥은 많이 봤지만 평생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하하'
대부분 자기 고향에서도 동네만 다니거나 딱히 지역의 세세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진 않다.
개인적으로 '관광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시민이 되고싶어 공부를 해보긴 했다.
그러나 막상 지나가며 눈에 보이는 유적지 이름을 모두 읊지는 못하니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전공이 문화인류학에 문화예술행정 석사과정을 수료하며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정책적인 측면이다.
가끔씩 방문하는 고향은 경관이 조금씩 바뀌어 있었고 이에 미루 짐작하곤 했다.
'아 지금 그 정책이 이러저러하게 실행되고 있구나!'
최근 개인적으로 공부 중인 한 지역을 본다.
경주 쪽샘지구라는 곳이다.
이곳은 경주시내 역사지구, 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의 5개 지구(월성, 황룡사, 산성, 남산, 대릉원지구) 중 한 곳이다. 대릉원 바로 옆인 쪽샘지구에는 현재 신라시대 유물을 발굴 중이며 2014년에는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쪽샘유적박물관도 개관했다.
간략한 사업 개요는 이렇다.
쪽샘지구 정비발굴조사
◆ 민가 등으로 훼손된 국내 최대 규모의 신라 고분군 복원 정비
◆ 세계적인 신라유적지 메카로 천년고도 역사도시경주 복원
사업기간 : 2006 ~ 2030(25년간) 위 치 : 황오동 320번지 일원
사 업 비 : 54,000백만원(국 37,800, 도 4,860, 시 11,340)
사업내용 : 쪽샘지구 고분 분포조사 (158,116㎡) 실시, 쪽샘 발굴관(44호분) 정밀학술발굴 조사 실시
『2016년 주요업무 추진보고』, 경주시 문화관광실, p.44
사업개요까지 가져온 이유는 이곳의 모습을 올리기 전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2007년 여름에 촬영했던 사진들이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곳도 있다.
정비사업이 시작된지 1년이 지난 즈음이다.
Zoom in
Zoom in 1
#07. 여름
#Nikon FE2
사진기 하나 들고 친구랑 쪽샘지구를 터덜터덜 돌아다니다 만난 녀석이다.
경계하는 건지 반가운 건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무표정. 어릴 때 이렇게 강아지를 키우는 마당 있는 집이 부러웠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반려견도 반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녀석의 무표정에 나 역시 심드렁하게 찍고 돌아섰다. 녀석의 굳건한 표정을 살리고 싶어서 줌인.
그런데 이 집을 포근히 감싼 대문을 보면 이 강아지의 따뜻한 주인네 모습이 그려졌다. (원본: Zoom out 1)
Zoom in 2
#07. 여름
#Nikon FE2
부부로 보였던 어르신들. 워낙 조용한 동네여서 이분들이 나누는 얘기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비가 오려는지 음침한 하늘이 끼었고 바람이 불며 어르신들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여름의 뜨거움을 식히는 습기는 바닥의 모래도 쉽사리 날려 보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차분히 가라앉아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도 짓누르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원본: Zoom out 2)
Zoom in 3
#07. 여름
#Nikon FE2
두런두런. 한동네에 오래 살면 동무가 한 명씩 꼭 있다. 저 멀리 가는 아재를 보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신다.
응팔 시리즈 이후로 그리웠던 풍경 중 하나이다. 길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한 마디씩 한다. (Zoom out 3)
무슨 얘기를 하실지 궁금해 아재를 따라 저 방향으로 걸어가 볼까 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자마자 두분은 뒤를 돌아보셨다. 다음 수다의 주제는 '나'라는 직감에 황급히 돌아섰다.
Zoom in 4
#07. 여름
#Nikon FE2
보살. 쪽샘지구에도 있지만 대릉원 맞은편 황남동에도 보살집들이 꽤 많이 있다. 2002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당에게 가서 남녀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 장면이 촬영된 동네가 바로 옆동네다.
원래는 대량의 신라시대 고분이 있던 지역이 이곳 황오동이다. 그 기운이 남아 있어서일까. 유독 경주에서도 황오동과 황남동 이 부근에 보살집들이 몰려있는 건 우연이 아닌 거 같다. 이건 필자의 어림짐작일 뿐이지만 수많은 신라시대 대표 고분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고 아직도 땅속에 묻혀있다.
경주에는 우스개 소리로 '땅 파면 유물 나온다'는 말이 있다. 특히나 이런 지역에는 주민들이 문화재 보호법 때문에 내집 하나 보수도 제대로 못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 이곳은 본격적인 '복원'작업이 이뤄지며 주민들 하나 둘 집을 두고 떠나야 했다. 평생 살던 동네에 뒤늦게 발굴이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을 것이다.
지역 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민의 입장과 외부인이 보는 시선이 확연히 다르다.
이분들에게 더 다가가 찍기에는 머리 위를 어지러이 채운 전기선부터 제제하는 기분이 들었다.(원본: Zoom out 4)
Zoom in 5
#07. 여름
#Nikon FE2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면 이런 상황이다. 이 지역은 6,70년대에는 유흥가였다가 이후 슬럼지역이 되고 유적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일일이 이뤄지진 않았다. 지역 민가의 집 아래에 있던 유물들이 알게 모르게 파괴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쪽샘지구가 있는 황오동에서의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사례로 '문무왕릉비' 이야기가 있다.
한 수도검침원이 어느 가정집에서 빨랫돌을 보고 평소에 듣던 역사 수업에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보통 빨래판과 달리 한자가 적혀있었고 미심쩍은 맘에 그 길로 달려가 신라문화동인회 김윤근 부회장에게 알렸다. 그리고 곧 경주박물관에서 유물을 수거해갔다.
그동안 통일신라의 기록이 담긴 유물 위에서 빨래가 됐던 것이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 과제를 위해 이 부회장님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에도 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에 발견될 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부회장님도 그 검침원이 교육받지 않았다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아찔한 상황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사진 속 차곡차곡 쌓인 상판이 나름 규칙적으로 하늘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저 모습이 재미있어 찍었지만 사실 그 앞에 빨래가 말려지는 모습(원본: Zoom out 5)에 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Zoom out
Zoom out 1
Zoom out 2
Zoom out 3
Zoom out 4
Zoom out 5
내 짧은 단렌즈로 화면 가득 채울 수 없었던 장면들.
부득이하게 눈앞에 보이는 화각에 담았다.
그리고 이제야 진짜 장면들을 확대해본다.
Zoom in <경주 쪽샘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