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요일 밤

센티함이 찾아오는 시간

by 문화수요자
Zoom in

: 카메라가 (줌 렌즈를 써서 피사체를) 확대/축소하다

출처: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Zoom in' 한 사진은 촬영할 때 확대하고 싶었던 장면입니다.
그러나 항상 단렌즈 밖에 없었습니다.
이글에 싣는 장면들은 필자의 얇은 동공으로 줌인한 순간들을 다시 편집한 사본들입니다.
원본사진은 글 하단에 있습니다.

링크 : 첫 번째 글 - Zoom in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다가 한 번씩 센티함에 풍덩 빠진다.

별 의미 없었던 일상의 단면들에서 괜히 울적함을 느낄 때,

그렇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내일은 내 기분을 북돋아주는 드라마라도 한편 할 테지만 이 밤은 참 느리고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무쪼록 매번 똑같은 일주일은 반복되고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없다.

그럴 때 쏟아지는 여운들을 담은 10년이 다 된 사진 몇 장을 꺼낸다.

별로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만도 않고, 그냥 밤에 자기 전에 스크롤을 내리면서

덤덤히 보고 덤덤히 내릴 수 있는 장면들이다.



Zoom in

Zoom in 1
남매

#07. 가을

#Nikon FE2


아, 그런데 첫 사진부터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얘기다.

사진 자체는 아무 이상 없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평범한 피사체도 특별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에게 이 사진은 그렇다.


누나랑 동생이 있는 모습을 보면 이제 감흥도 점점 사라진다.

내 몸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던 어느 날의 아픔도 무뎌지는 건가 싶다.

몇 년 전까지는 남매가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이제 나와 상관없는 관계라고 느꼈다.

이미 너무 어린 녀석들의 모습은 세월에서 격차가 느껴지기 마련일 텐데, 이상하게도 다 큰 남매들보다 어린아이들이 아웅다웅 노는 모습이 더 가슴을 저리게 했다.

그 순간 어릴 때의 나로 리셋된다. 그리고 내 옆에 내 동생이 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매일 서로 토닥이던 녀석을 다시 못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어느 과거로 돌아가 있곤 했다. (Zoom out 1)


그런데 이제 무던하다.

아니 일 년에 한번쯤은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인간의 뇌는 기억을 모두 못 가지는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세상에 특별한 세계에 들어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랬을 것이고, 다들 그 세계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될 것이다.

너무 아파하지 말고 힘내자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삶인 것 같다.

지나갔지만 오늘 일어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서로를 위한 심심한 위로로 마저 사진을 풀어간다.



Zoom in 2
갈대파도

#07. 가을

#Nikon FE2


매서운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갈대를 본 적이 있다.

마구 휘날리는 모습이 한없이 연약하다. 그리고 유연하다.

바닥까지 쓰러졌다 다시 반대편으로 튕기듯이 올라간다.

갈대 하나가 아닌 여럿이서 움직이니 땅에서도 파도를 볼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강렬한 노을빛이 갈대숲을 비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쏟아져내렸다.

맞은편에서 바라본 그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Zoom out 2)


가끔 시골로 내려가서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이 그리워지다가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맞은편에서 바라보면 서울의 야경도 그러하다고 한다.



Zoom in 3
불꽃

#07. 가을

#Nikon FE2


불꽃놀이는 언제 봐도 두근 거린다.

펑하고 터지기 직전에 하늘로 쏟구쳐있는 순간이 제일 기대된다.

이번에 올라가는 줄기는 과연 어떤 불'꽃'으로 터질 것인가.


20대의 나도 한줄기 불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직도 수직 상승하며 30대를 앞둔 지금, 터지기엔 몇 년은 더 필요하다고 여기서 터지지 않고 철없이 더 올라가려 한다.

어떤 모습일지 가졌던 기대는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속도가 증명해준다.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힘이 부친다.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아 이 친구도 곧 터지고 촤- 떨어지겠구나란 생각이 번개같이 스친다.

그렇지만 그동안 투자한 게 얼마냐며 초기에 받았던 반작용을 힘껏 끌어내본다.


가끔 그냥 떨어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사실이 존재했다.

높이가 달라서 그렇지 안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불꽃놀이.

그것이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불꽃 모양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은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 (Zoom out 3)

오호라 통제야. 앞이 보이지 않지만 내 인생에 대한 변명을 한다.

원래 다 똑같지 않다고.



Zoom in 4
햇살가득한 오후

#07. 가을

#Nikon FE2


해가 밝은 날 삼삼오오 답사 온 모습이다.

조용한 오후에 고적한 곳을 살짝 깨워준다. 어느새 왁자지껄 수다로 주변이 덮였던 기억인데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해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초록빛과 여간 잘어울렸다. (Zoom out 4)

제법 점잖았던 당시의 풍경을 들여다보다가 고마운 사실을 문득 발견한다.

이 사진처럼 한낮에 밖을 돌아다니는 행운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은 지하공간이었다.

그 전에 일했던 곳은 3층, 5층, 6층.

집은 1층, 2층, 4층.

반지하를 안거치고 바로 지하로 진입하니 대지의 습기가 거침없이 몸을 감쌌다.

어느새 햇살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침에 들어가고 밤에 나오는 일이 허다할 때마다 겨울보단 여름이 풍요로웠다.

몸에 큰 지장을 준 건 아니지만 왜 인간이 아침에 깨고 밤에 자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았다.

식물처럼 광합성을 해야 한다. 가지에 붙은 이파리만 신선하란 법은 없다.

꼭 지하가 아니더라도, 건물 안에서 식물은 햇살 비치는 창가에 둔다. 혹은 베란다에 모셔둔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그러면 좋으련만.

우리들도 말이다.


Zoom in 5
거울

#07. 가을

#Nikon FE2


센티함으로 시작했다가 힘없이 떨어져 버리는 꼴이다.

화요일 밤이 그렇다. 어제 이미 시작했는데 끝은 아닌 것이 중간도 아니다.

일주일 동안의 자신을 성찰하기에도 애매한 지점이다.

자기 전에 씻다가 거울을 보긴 했지만 물끄러미 바라보진 않는다고 할까.


그에 비해 사진 속 나무는 무게에 못 이겨 그런지 수면과 닿기 직전이다.

강제로 자신과 접촉, 나르시시즘은 아닌 모습이다.

음침하게 뒤덮인 주변이 불이 꺼지기 직전 내방과 닮았다.

다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이녀석처럼 솔직한 내면을 보게 되는 거 같다.

바로 자기 직전에 하는 생각이 오늘의 나를 말해주는 거울인 셈이다. (Zoom out 5)


그렇게 눈을 감으면 뻔한 일상의 센티함은 또한번 사라진다.


어느새 수요일이다.




Zoom out


Zoom out 1
어느 과거로 돌아가 있곤 했다. (Zoom in 1 중)




Zoom out 2
맞은 편에서 바라본 그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Zoom in 2 중)




Zoom out 3
그리고 불꽃모양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같은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 (Zoom in 3 중)




Zoom out 4
해맑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초록빛과 여간 잘어울렸다. (Zoom in 4 중)




Zoom out 5
바로 자기 직전에 하는 생각이 오늘의 나를 말해주는 거울인 셈이다. (Zoom in 5 중)




내 짧은 단렌즈로 화면 가득 채울 수 없었던 장면들.

부득이하게 눈앞에 보이는 화각에 담았다.

그리고 이제야 진짜 장면들을 확대해본다.


Zoom in <화요일 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