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사람으로 알아보는 나의 모습
내 주변 다섯 사람을 평균 내면 그게 나
어디서 들었더라?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 못 하다가 배달의 민족 장인성 이사의 책, '마케터의 일'을 필사하며 다시 발견했다. '그래 가장 가까운 다섯 사람이 날 보여주는데 그게 누굴까?' 갑자기 고르려니 심란해졌다. 글쓰기 모임 주제로 아이디어를 내놓고도 스스로 정리하기 어렵다.
책 속 문맥을 빌리자면 학생 주변은 학생, 신입사원 주변엔 신입사원, 사장님 주변엔 사장님이란 의미다. 가끔 생각해봤는데 내 주변엔 평범한 직장인이 대다수고 나도 그중 하나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내려니 아쉽다?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MBTI 테스트 못지않게 주변 다섯 사람을 꼼꼼히 분석해보자. 모임도 포함시켜 본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당신들의 모습을 빌려 나를 찾아본다.
남자 친구와 나는 여러 면에서 반대다. 정치관, 종교관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가치관이 반대다. 그중 대표적으로 반대인 게 관심사다. 나는 줄곧 문화, 콘텐츠, 예술 등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재에만 관심을 가졌다. 경제 문맹과도 다름없는 나였기에 경제, 부동산 등 실물 경제에 빠싹한 남친은 나의 무지에 놀랐다. (물론 남친도 내 관심사 분야는 거의 모른다.) 최근엔 내가 너무 모르는 거 같아 경제 기사, 관련 도서를 읽으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점점 내 귀에 아는 단어가 들리며 재미마저 붙었다. 잘하면 남친보다 더 잘 알 수도 있겠단 생각에 자신감이 생긴다.
=> 나는 경제 문맹일 정도로 몰랐지만 필요하면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가족처럼 지내는 영어 스터디, 찰리 패밀리. 코로나 때문에 스터디를 안 한 지 오래지만 카톡으로 매일 대화한 건 4년이 넘었다. 각자 일하는 분야, 출신, 나이도 다 다른데 공통적으로 '선'을 지킨다. '이건 정말 아니잖아?'라고 할 때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선이 유사하다. 그래서 항상 이 방에 고민이 올라온다. '뭐든 말해, 정말 어긋나는 게 아닌 이상 네 편이야'라는 규칙이 있다. 영 아니다 싶은 행동은 누구 한 명이라도 잘못을 짚어주고 그렇게 '사람다움'을 서로의 말로 유지한다. 우린 동조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에 와서 생면부지로 만났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 덕에 서울 생활이 즐겁다.
=>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간언 해주는 사람들이 더 좋다.
나와 주변이 영 다른 사람을 보면 특히 날 더 잘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학 다녀온 사촌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파티 문화를 들려주더니 대학 진학에 이어 이제 주변 사람들이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등에 다닌단다. 해외는 여행만 가본 내 입장에서 재밌고 신기했다. 이제 둘 다 서울에 있어 한 번씩 만나는데 평소 핫플, 지역 문화에 관심 많은 내가 해설을 해주며 돌아다닌다. 이 골목의 분위기, 역사적 배경, 서울시 무슨 정책이 영향을 줬는지 등을 줄줄 말하면 사촌은 해박한 내 지식에 놀란다. 우린 다른 환경에서 다른 지식을 쌓으며 살아온 것이다. 어릴 땐 막연히 사촌의 해외 경험이 부러웠는데 사촌은 외로움과 한국에서의 생활을 등가 교환했다. 나는 토종 한국인으로 수능 치고, 대학, 직장생활까지 하며 외국인이 경험 못한 한국 생활을 한 것이다. 녀석 덕에 내 소중한 정체성을 감사히 여기게 됐다.
=> 난 오리지널 한국 사람이다.
딱 한 명으로 정하기 어려운 고향 친구들. 주로 일대일로 연락하는 친구들인데 인스타나 SNS를 안 해 근황도 모르는 친구들이다. 조용히 사는 그 친구들에게 전화하면 '나야, 항상 똑같지~'하고 안부를 알려준다. 최근에 통화한 친구는 '서울이 재밌어? 나도 서울에서 지내봤지만 여기나 서울이나 사는 건 똑같아 보여. 정신없기만 하지'라고 했다. 20대였으면 몰랐을 텐데 30대가 되니 그 말이 수긍된다. 새로운 걸 도전하기 좋아하는 나는 스스로 많이 변했다고 느꼈는데 친구들과 연락하면 여전히 똑같다. 회사, 육아, 가족, 우정 등 고향의 정서로 얘기하다 보면 영락없는 '경주 사람'이다. 꺌꺌 거리며 한 시간 넘게 통화하고 나면 시원한 아메리카노 마시며 황리단길을 돌고 온 기분이다.
=> 서울에 10년째 살고 있는 경주 사람이다.
올해 제일 큰 변화 중 하나가 크리에이터 클럽에 참여한 것이다. 한 시즌만 하고 그만두긴 했지만 아직까지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사이드 모임(크클링)이라 볼 수 있는데 정규모임보다 더 길게 활동하는 중이다. 작업하는 모임과 글쓰기 모임 두 가지! 작업 모임은 각자 목표를 두고 격주 일요일마다 모여 작업하는 모임이다.(7월은 보류 중) 리더였던 분은 책을 냈고, 나머지는 앱 개발, 유튜브 촬영, 일기 쓰기 등을 진행 중이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나다움'을 주제로 7명이 돌아가며 쓴다. 똑같은 주제를 놓고도 각자의 경험이 다 다르다. 두 모임의 공통점은 멤버들이 꾸준히 무언갈 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점이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에너자이저가 된 것 같다. 주변 다섯 사람뿐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도 나를 보여준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이들과 함께 있을 때 평소보다 특별해진 기분이다.
=> 자신을 믿고 새로운 걸 만드는 원 오브 크리에이터다.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고치고 자소서를 쓰다 보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른다. 분명한 잣대가 없어서 일기부터 시작해 내 과거를 뒤적였는데 이렇게 주변 사람만 참고해도 객관적으로 날 바라볼 수 있다. 작성하는데 오래 걸렸지만 곰곰이 생각하며 쓰니 그들의 존재가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계속 서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