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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Jul 14. 2020

로빈슨 크루소도 친구가 필요해

다섯 사람으로 알아보는 나의 모습

"이번에는 만나서 직접 얘기 나누시죠"


오랜만에 매거진을 함께 쓰고 있는 작가들과 모임을 가졌다. 새로 글을 쓸 소재에 대해 담소를 나누면서 정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주제가 많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명제가 하나 있었다.


'가장 가까운 5명의 평균을 내면 그게 나' 


다들 이 명제를 보고 마음에 든 모양새였다. 저마다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내 몇몇 작가분의 눈이 떨리는 게 보였다. 결국 작가 A님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요새 만나는 사람이 적어서.... 글에 쓸만한 사람이 5명이 안되면 어쩌죠?"

"그러면 내가 만나고 있는 단체나 모임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요?"


삼포, 사포 세대들에게 사람을 여러 명 만나는 자체가 사치인 걸까? 다들 5명에 누굴 넣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나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뭔가 나의 모습을 잘 나타낼 사람을 넣어야 할거 같고 왠지 나와 친한 사람이 포진해야 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최근 5개월 동안 흉금을 터놓고 지냈던 사람이 5명이 안됐다. 1인 가구를 지향하며 본가를 떠났지만 내 생활은 1인 가구가 아니라 고립된 생활이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안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여러 모임에 꾸준히 나가고 있고 활동도 여기저기서 많이 하고 있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 이후의 인간관계라는 게 마냥 쉽지 않아서 그런지 격의 없이 연락하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 요즘같이 친하지 않은 사람과 갑자기 만나는 게 부담스러운 시기에 새 친구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을 떠올려봤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 스틸컷


우선 대학교 은사님이자 현재는 친한 지인이자 친누나 같은 존재인 S 교수가 생각났다. 그녀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신의 넘치는 기운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다. 비타민이라고 하니 그의 에너지를 과소평가한 느낌이 든다. 주유소가 맞는 표현이겠지. 자신의 일인 강의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로서, 콘텐츠 제작자로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여러 분야를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능력, 사람을 끌어당기는 밝은 매력, 미소를 장착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까지 그녀에게 배운 것이 많은 편이다. 날카로운 송곳 같던 사람이었던 내가 둥글둥글한 숟가락 같은 사람으로 바뀐 데에는 그의 영향이 컸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은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크리에이터이자 평론가 K다. 그와 알고 지낸 지 벌써 8년이 됐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의 포커텔로에게 K는 영화와 콘텐츠에 대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해줬다. 8년의 세월 동안 날카로운 장검 같던 그 역시 단단하면서 표면이 매끄러운 방패처럼 변했다. 날 것의 K 시절을 봤던 나나, 송곳 같던 나를 본 K, 둘 다 서로가 많이 변했고 성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콘텐츠에는 내용과 깊이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입맛과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이도 K였다. 


세 번째로 생각나는 사람은 내 절친 M이다. M이 있는 패밀리 친구들 모두 20년 이상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다. '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부부동반 모임을 했을 텐데'라고 혀를 끌끌 찰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 나를 생각해주는 이들이다. 특히 M은 최근 10년간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물리적, 금전적인 도움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특히 내가 힘들 때면 언제든 내 앞에 나타나 고민을 들어줬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가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옆에서 직언을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때 모났던 성격부터 변덕이 심한 기질까지 그는 친구가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충고를 해줬다. 그의 조언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나 스스로 느끼고 있던 부분을 긁어줄 때가 많아서 그런지 '아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일 때가 더 많았다. 최근에 태어난 아들내미 보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아직도 녀석이 아빠인 게 실감 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떠오른 인물은 영화 모임에서 만난 C다. 동안인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놓거나 불편하게 대하는 법이 없다. 이는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사람을 편하게 대하지만 무례하지 않게 하는 모습. 그는 이것을 완벽하게 하고 있었다.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어 일과 일상 모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와 비슷한 면이 많고 그만큼 잘 통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의 장점은 남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답한다는 점이다. 남자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실 때면 이야기를 하다가 막힐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뻔한 정치, 스포츠,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 만나면 한 편의 알쓸신잡을 찍는다. 부담 없는 동네 친구이자 글을 쓰는 동지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사람은 함께 글을 쓰는 '나다움' 멤버들이다. 소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많지만 지속적으로 한 가지 목적으로 뭉친 사람들은 지금까지 없었다. 시즌이 끝나면 자연스레 그 관계가 소멸하곤 했다. 돈 내고 사람을 만나고 그 시간이 끝나면 헤어지는 계약커플 같다고 할까. 하지만 '나다움' 멤버들과는 꾸준히 연락하고 글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져 있어서 오랜 시간 연락을 해오고 있다. 이 멤버들은 각자의 색이 뚜렷하고 개성이 넘치는데 옷에 새겨진 패턴처럼 자연스레 뭉칠 줄 안다. 그래서 글을 쓰고 하나의 목적으로 활동하는 데도 거추장스럽거나 힘들다기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매주 글을 쓰면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각자의 삶에 플러스 효과가 되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는 '5명을 누구로 하지'라고 고민했는데 쓰다 보니 내가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집에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과 직접적, 비대면적으로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긴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척(톰 행크스)도 윌슨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누군가가 항상 필요하다. 무인도에서 척의 친구가 되어준 윌슨처럼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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