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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찰칵

1. 한국, 고속도로 위에서 스쳤던 풍경들

by 문화수요자
Zoom in

: 카메라가 (줌 렌즈를 써서 피사체를) 확대/축소하다

출처: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Zoom in' 한 사진은 촬영할 때 확대하고 싶었던 장면입니다.
그러나 항상 단렌즈 밖에 없었습니다.
이글에 싣는 장면들은 필자의 얇은 동공으로 줌인한 순간들을 다시 편집한 사본들입니다.
원본사진은 글 하단에 있습니다.

링크 : 첫 번째 글 - Zoom in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


필름 카메라의 묘미는 흔들리는 순간들을 고정하는 법,

손에 힘 빡! 팔뚝에 근육 빡!

빡빡하게 에너지를 끌어당겨 찍는 묘미가 있다.


특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손을 놓아서 다시 담아지기 어려운, 필름 카메라로 시작한 버스 안에서의 촬영.

그 시절 사진들 중 어느 여름날의 사진을 꺼내본다.



Zoom in


Zoom in 1

#08.여름

#Nikon FE2


버스를 세우고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길이었다.

창문에 카메라를 갖다대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 장면이다 싶을 때 찰칵!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이렇게 매력적인 장소가 참 많다.

내 머릿속에도 GPS가 탑재되어 있다면 바로바로 장면들을 눈으로 담고 다음에 찾아갈 텐데.

아쉬움이 가득했던 그 시절엔 적극적으로 그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상상만 했다.



Zoom in 2

#08.여름

#Nikon FE2


경부 고속도로를 자주 탔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때 괜히 서울 갈 핑계가 매달 있어서 지방에서 재학 중이었던 나는 서울 친구들보다 어쩌면 더 서울 구경을 자주 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배부르게 서울 문화를 한껏 섭취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답답했던 시골의 정취가 새롭게 다가와서 좋았다.


20대 초반의 희망찬 패기는 수능시험에서 낮은 점수로 입학한 학교를 불만족하게 해주진 않았다.

수능은 수능이고 내 능력은 또 다른 능력이다.

그런 생각이 가득한 채로 내려왔던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Zoom in 했던 풍경은 더욱 순수했다.


지금은 서울에 있으면서 이 당시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고향에 가지 않는다.


내 가족의 무덤 이리라,

일구는 밭 옆에 비석도 세워두고

부부는 두런두런 걸어 다녔다.



Zoom in 3

08.여름

#Nikon FE2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감히 엄두가 안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나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온 동양의 문화에서 서양과는 유독 다른 수학적 사고, 새벽에 일어나는 부지런함 등에 대해 비교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조상들의 지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상세한 설명이 책 본문에 있지만 간략히 이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p. 197 - 농부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공동체에 속하는 다른 사람과 협동해야 하지만, 목동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농부는 동양의 문화, 목동은 서양의 문화를 나타낸다.

그냥 이 사진을 보고 농사에 대해 다시 떠올려본 이야기다.

하단의 Zoom out 3에서 또다른 책 이야기도 덧붙였다.



Zoom in 4

08.여름

#Nikon FE2


서울에서 경상도로 내려가는 버스는 아마 대개 이곳에서 쉴 것이다.


선산휴게소에서 간식을 사오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재밌는 이 장면을 발견.


개가 쉬야를 하고 있다.

그리고 Zoom out 하면서 바닥에 쓰인 글로 혼자 킥킥 거렸다.

(Zoom out 4에서 상세히 설명)





Zoom out


Zoom out 1
버스를 세우고 내려서 걸어가고 싶은 길이었다. (Zoom in 1 중)



Zoom out 2


내 가족의 무덤이리라, 일구는 밭 옆에 비석도 세워두고, 부부는 두런두런 걸어다녔다. (Zoom in 2 중)



Zoom out 3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감히 엄두가 안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Zoom in 3 중)


앞에서 마저 못한 얘기는 또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다.


신경림 작가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현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고민과 같은 80년대 후반의 고민이 적혀있었다. 농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p.321 – 노인들의 젊은이들에 대한 불만 중에 가장 자주 듣는 것은, 젊은이들은 일을 여기저기 벌여놓기만 하고 마무리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고 나중 할 일을 혼동하는가 하면 일손을 모아서 함께 해야 할 것도 제각각 따로따로 벌여놓기 때문에 부산하기만 하고 진척이 없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태도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어느 좌상님께 여쭈어보았더니 한마디로 농사일을 해보질 않아서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간결하고 정곡을 찌른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농사일은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일관된 노동입니다. 일의 선후가 있고, 계절이 있고, 기다림이 있습니다. ... “젊은애들 도회지 나가서 잃는 것이 어디 한둘이가.” 그 좌상님의 개탄이 제게는 육중한 무게의 문명비판으로 들립니다.
젊은이들은 노동을 수고로움, 즉 귀찮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비하여 노인들은 거기에다 자신을 실현하고 생명을 키우는 높은 뜻을 부여합니다. 요컨대 젊은이들은 노동을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소비, 에너지의 소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22 – 그러나 막상 돌아갈 농촌도 없고 뿌리내릴 터전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메마른 자세만을 꾸짖는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일 뿐 아니라 너무나 야박한 짓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노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가 젊은 사람들의 태도 중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은 젊은 사람들은 미운 사람이 시키는 일이나 별로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지극히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입니다.
일 그 자체에 몰입해서 무슨 일이건 일이라면 장인의 성실성을 쏟는 노인들의 이른바 무의식성에 비하면 젊은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겉보기에 상당히 불성실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에 담겨 있는 강한 주체성은 의당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노인들에게는 없는 탄력이며 가능성입니다.


80년대에도 그랬는데 2016년에 20대인 내가 봤을 때 얼마나, 거리감이 느껴지는지.

특히나 농사의 ㄴ자도 접해본 적 없었던 나름 시골 출신의 나조차도 이런데.

란 생각이 이 사진을 꺼내며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Zoom out 4
04_여백.jpg
04_Full.jpg
개가 소변을 보고 있다. 그리고 Zoom out 하면서 바닥에 쓰인 글로 입가에 웃음이 띠어졌다. (Zoom in 4 중)


이 사진은 나 혼자 유독 애착을 가지는 사진이다.



개가 소변보는 장면.


개는 내보내고 있었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긴 버스가 나가는 출구 앞이다.


'나가는 곳'이다.


ㅋㅋ



나가는 곳에서 개는 나가는 곳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내 짧은 단렌즈로 화면 가득 채울 수 없었던 장면들.

부득이하게 눈앞에 보이는 화각에 담았다.

그리고 이제야 진짜 장면들을 확대해본다.


Zoom in <버스 안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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