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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하기싫어 Sep 21. 2024

아무튼 원래 그래

확인되지 않은 시작, 그 처음

"아무튼 원래 그래. 그럴껄?"

'원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일상에서 자주 듣고 말하는 흔한 단어다.
원래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이것 이외에는 모두 거짓되고 부정이 되는 단호한 성격의 단어다. 그도 그럴것이 원래 뒤에는 반문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원래 그런것이 어딨어?' 크고 작은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음이다.

원래 그렇다는게 무슨 뜻일까.
근본이다. 원래는 근본이다. 전해져 내려온 그 처음, 시작점이다. 역시나 가지고 있는 뜻 또한 매우 단호하고 엄격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그렇다'라고 말하고 나면 기분이 내심 찝찝하다. 엄격한 단어를 사용한 책임감의 무게 때문인지. 정말 원래 그런지에 대한 사실 확인의 불확실성 때문에 오는 불안감인지. 좋지 못한 상황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쓰는 전략적 단어여서 그런지 기분이 뒤숭숭 해진다.

한차례 단호하게 '원래'단어를 뱉고 난 뒤에는 기운이 빠진다.
몸의 기운은 차갑게 빠져나가지만 내면의 열은 한동안 식을 줄 모르고 뜨겁기만 하다. 집에서 기다리고있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탄산 가득한 알루미늄 캔속에 들어있는 보리음료 친구와 함께 뜨거움을 식히고 싶다.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원래  내 발이 무거웠나.'
'집이 원래 이렇게 멀었었나.'
'8월의 바람은 원래 이렇게 뜨끈하고 눅눅하게 불어왔었나.'
누군가 에어컨 실외기를 내 옆으로 계속 옮겨가며 따라오는 기분이다. 뜨거운 열기에 대항하듯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이 분주하다.
'내가 땀이 원래 이렇게 많았었나.'
'내가 원래 이렇게 원래라는 말을 많이 원래 사용했었나..?'
-

-
'... ?'


'원래' 무한 굴레 저주에 빠져버렸다.
어질어질하다.
싫어하는 단어 속에 갇힌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어이없다.
-
원래 그래.
'처음부터 그래 왔어. 그래온 거야.'
'대부분이 원래 이때쯤 취업 다들 하잖아.'
'원래 이쯤 다들 결혼해.'
'지금쯤 원래 같았으면 보통 승진했어.'

'아.. 찾았다!.'
원래가 싫은 이유.
원래가 만들어 놓은 틀.
주변이 온통 원래가 만들어 놓은 확인되지 않은 내려져 내려오는 처음, 시작점 투성이다.

'원래'를 당연시 여겨져 내려오던 어떠한 사회적 통념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이렇게 살아가야 된다고 또는 했어야 됐다고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책임감 없이 툭, 이야기한다.

'원래처럼'으로 시작되는 삶에 갇히고 싶지 않다.
확인되지 않은 시작점, 그 처음을 의심치 않고 걸어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사회적 통념과 삶 자체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고 투쟁하겠다는 거친 뜻은 아니다.

그저, 나다운 삶.
획일적인 원래가 만든 직선인 길 위를 걷기보다는
꼬불꼬불하고 다소 불편할지 모르는 나다운 길을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온전히 완주하고 싶다.
-

-

-
그래서
'아무튼 내 길은 원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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