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혼잣말
"내가 여기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아."
운동 겸 산책을 하면서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바다 냄새, 파도 소리, 새소리, 흔들리는 꽃가지, 그리고 망망대해를 외롭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범섬. 계속해서 자연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범섬 안녕, 새들아 안녕, 이틀 만에 이미 친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분지인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보다 더 큰 분지인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 어디를 보아도 산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당연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에 잠깐 살았을 때도 산이 없는 풍경이 낯설었고 몽골에 갔을 때도 드넓은 초원이 두려웠다.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뻗어 있는 지평선은 아름다웠지만 나를 두렵게도 했다. 안정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옛날 사람들이 세상을 네모로 생각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산이 없는 평원의 지평선은 마치 절벽처럼 보였으니까.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차를 타고 깎아지른 고개를 넘을 때면 매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주 위험한 롤러코스터를 오래도록 타는 그런 주행을 몽골에서 경험했었다. 이 섬에서는 어딜 가나 한라산이 보인다. 하지만 이 섬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와는 반대로 산을 해안과 바다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섬 끝에 가면 세상 밖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불안감을 바다가 상쇄시켜주어서 다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그 바다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은 바다의 호랑이, 범섬이 나에게 수평선의 끝에서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보다 안정되었고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해안가를 걷다 스트레칭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정말로 하늘이 있었다. 오직 하늘만이 가득했다.
이 섬에 오기 전에 나는 그런 푸른 하늘을 보며 떨어지고 싶었고 잠들고 싶었다. 비에 흠뻑 젖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곤히 잠들고만 싶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바라고 바라던 하늘이 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큰 건물도 높은 산도 없는 이곳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끝도 없이 펼쳐져도 두렵지가 않고 오히려 이 땅을 감싸주는 머리 위의 바다 같다.
"나는 이제 섬에 있어."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홀로 됨의 의미
민감한 내가 민감한 사람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남보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사실 사흘 내내 너무 활동적으로 지냈더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어깨에 파스 붙여줄 사람이 없어서 엉망진창으로 붙이다가 엄마가 그립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덜한 건 아니다. 그저 그리움과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고 잔잔하게 즐길 수 있어서 나는 홀로 이곳에 왔다.
그리고 아주 많은 마음들을 이고 지고 왔다. 선물 받은 달력, 포스터, 책, 텀블러, 미피 언니가 찍어준 사진, 언니와 친구가 사준 식기들과 엄마가 잔뜩 챙겨준 생필품들까지. 그런 크고 작은 선물들로 방을 꾸며두니 마음이 편했다. 잘 지내라는 마음이 담긴 그 선물들이 소중하고 소중해서 혼자여도 다 괜찮을 것 같다. 정말로는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