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 검은바위 해안, 일출, 실수도 우스꽝스럽게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검은바위 해안


새벽에 눈을 떠서 해가 뜨기만 기다렸다. 불면의 밤은 이 섬에서도 이어지는 걸까, 나는 긴 잠을 잘 수 없는 걸까, 그런 걱정도 들었지만 그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이 나를 깨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희뿌연 여명과 함께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자마자 갓 태어난 기린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보인다, 보여!"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데 소란을 떨며 범섬과 첫인사를 나누고 옷을 주워 입고 뛰쳐나갔다.


아주 이른 산책, 차갑고 건조한 공기, 섬에서의 첫 끼니는 편의점 샌드위치였다.

파도소리를 잘 듣기 위해 이어폰을 왼쪽만 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방향을 바꿔 오른쪽에만 이어폰을 꼈다.


이 해안에서 바다와 땅의 경계는 하얀 모래 대신 검은 바위들로 그어져 있다. 화산이 남긴 검은 해안이다.

최영 장군은 이 검은 바위 해안에 성곽을 쌓으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범섬까지 뗏목을 이어 길을 만들었다. 흔들리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군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고 싶다. 나였다면 그냥 무서워했을 것 같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고 짜고 깊은 바다는 더욱 무서워한다. 이전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을 때 코로 숨을 쉴 수 없다는 답답함과 발이 닿지 않는 깊고 차가운 바다에 대한 공포로 하얗게 질려 배 위로 도망쳤던 나였다. 그런데 그 물 위를 불안정한 뗏목을 타고 건너야 한다면 나는 아마 목숨을 건 탈영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도망자가 되거나 잡혀 죽는 게 더 무서워서 건너갔을 것이고, 양심에 찔려서 책임을 내팽개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벌벌 떨리는 다리로 바다를 건너 저 먼 바위섬에 가서 진을 쳤겠지. 아마도 돌아와서는 그 모든 두려움을 밀어놓고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전투에 참여했다고, 뗏목을 이어 바다를 건넜다고, 그리고 살아 돌아왔다고. 그런 무용담을 두고두고 늘어놓다가 평범하게 늙어갔을 것이다.

영양가 없는 상상을 하며 검은 바위와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일출




유채꽃이 만발한 길을 지나면 커다란 유채꽃밭이 있고 그 옆길은 해녀들의 어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윗길로 향한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펜션들이 아니라 기념품점, 편의점, 식당 같은 것이 있는 작은 상점가가 나왔다. 평범한 어촌의 풍경이었고 그곳에 아마도 법환포구인 듯한 포구가 있었다. 포구까지 쭉 걸어가며 일출을 보았다. 바닷가에서 보는 일출이 색다른 이유는 떠오르는 해가 수면에 비치면서 수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빛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늘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빛의 길이 잔물결을 따라 일렁였다. 바위틈에 고인 물에 비친 동그란 빛무리에 손을 뻗으면 바닷물과 함께 오늘의 해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수도 우스꽝스럽게


이른 오전에 산책을 하고 와서 좀 쉬다가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살림을 꾸려야 했으니 점심때가 되기 전에 대형마트에 갈 생각이었다. 차가 없었고 버스를 타려면 15분을 걸어 정류장에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또 10분을 걸어야 한다면 그냥 한 번 걸어가 보자는 생각으로 시내를 향해 걸었다. 내가 간과한 것은 그 길이 오르막이라는 사실. 그리고 초행길은 더 길고 오래 걸린다는 사실. 50분을 걸어올라 월드컵경기장이 있는 번화한 시내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는 낡은 주택이나 펜션이 아니라 도시 외곽에 있을 것 같은 너무 높지 않은 신축 빌라와 아파트들이 많았다. 사람도 차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가를 걷고 또 걸어서 시내에 도착하니 갑작스럽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트도 처음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며 장을 봤다. 조금만 살 생각이었는데 먼 거리를 와보니 다시 올 엄두가 나지 않아 자꾸만 짐이 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만 원을 결제하고 있었고 마트에서 대여 및 판매하는 가장 큰 장바구니와 작은 장바구니에 테트리스를 하듯 빡빡하게 짐이 채워져 있었다.


마트 앞에는 택시 정류장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가끔 신중함이 지나쳐 객기를 부리거나 미련한 짓을 할 때가 있는데 하필 그때 그런 짓을 해버렸다. 그것도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법한 그런 미련한 짓이었다. 눈앞에 있는 택시를 타면 집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나는 50분을 다시 걸어서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한 10분쯤 내려가서 나는 이 모든 게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차도 사람도 없는 한적하고 외진 도로는 시원하게 쭉 뻗어있었지만 택시조차 다니지 않았다. 그 길 위에는 오직 나뿐이었다. 양손에 내 상체보다 큰 장바구니를 들고 있으니 손바닥에 붉은 줄이 새겨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이나 멈춰 서고 다른 방식으로 장바구니들을 들어보고 안 되겠어서 이고 지고 안고 끌고 하면서 홀로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기분이었냐면 너무 창피했다.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을 한 바보의 행색이었기 때문이다. 참 우습지만 그 순간에 나는 실없이 계속 웃었다. 웃음이 나오더라. 바보 같은 내 모습이 부끄러우면서도 남의 눈치나 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서늘한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미련한 스스로의 모습을 창피해하면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나는 해방된 기분이었다. 이 섬에서는, 이 바다 앞에서는 나는 얼마든지 바보가 되어도 괜찮고 뭘 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코를 막은 채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괴롭고 차가운 물속은 여기가 아니라 떠나온 그곳에 있었다. 이 바다에는 그런 고통이 없다. 스노클링을 시작도 못하고 내뺀 나는 선상에 홀로 남겨져 열대어를 구경하느라 신이 난 가족들을 내려다보면서 수치스러워했다. 그 수치스러움은 괴로운 기억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오늘의 실수가, 잘못된 선택이 자아낸 유쾌한 창피함은 우스꽝스러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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