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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75-78일 차:어제도오늘도내일도잘,너무 어려운 보통

들꽃의 봄,밤 산책,아침잠,하루살이,휴식의 제단,돌아갈곳,흔적도남기지않고

75일 차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잘


워낙 유명한 장면이긴 하지만 나 역시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이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이라고 인사하며 무대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미리 하루치의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 그리고 다시 보지 말자는 매정한 말이나 분노에 찬 말 대신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는 매일의 인사를 담은 종연사. 다시 보자는 인사가 아닌 기약 없이 건네지는 미래의 인사가 유쾌했다. 다시 보자는 인사는 다시 볼 때까지의 이별을 품고 있지만 하루치의 인사는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별 같지 않은 이별. 언제 다시 만나도 이상하지 않고 아무리 긴 시간 헤어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오늘 보고 내일 보더라도, 아니면 십 년 후에 보더라도 매일 보는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친구.


어젯밤 씻고 나왔더니 친구가 졸린 눈으로 깨어 있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왜 아직 안 자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내게 인사를 하려고 기다렸다고 했다. 친구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눈을 감았다.


배웅하는 길, 버스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급히 보내고 돌아서자마자 메시지가 왔다.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 줄 알고 천천히 하려 했다는 인사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너는 잘할 거야,라고 말해준 친구에게 잘 해왔고 잘하고 있지, 너도, 나도. 그렇게 답했다. 일하느라 잔뜩 지친 모습이 되어 찾아왔던 친구에게 다음 만남까지 건강하자고 했더니 노력하겠다는 답이 돌아와서 나는 기쁘게 약속했다!라고 답했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가득한 귤밭 옆길을 걷고 오늘따라 선명한 푸른빛과 물결, 따스한 햇살을 혼자 만끽하니 좋지만 허전하다. 속이 아플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시며 오늘만 산다고 말하던 친구가 아프고 싶지 않고, 내일도 살아가고 싶다는 내 대답을 가끔 기억해줬으면 한다. 혼자 남았지만 다정한 인사를 곱씹으며 다음을 헤아려보는 나처럼. 친구가 사준 유채꽃이 그려진 머리끈으로 머리를 올려 묶는 나처럼.




76일 차


들꽃의 봄


꽃만큼 계절의 변화를 변덕 없이 보여주는 존재가 있을까. 날씨가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이미 피어난 꽃은 꿋꿋이 봄은 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봄이 오면서 이 섬의 길은 우후죽순 자라난 들풀과 들꽃으로 인해 좁아졌다. 줄기에 잎사귀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길의 반만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흙을 갈아엎어 길을 내고 콘크리트로 돌로 땅의 숨을 막아보아도 작은 숨구멍 사이사이로 길가에는 들풀이 자라고 들꽃이 피어난다. 좁은 길은 그러한 생명력의 산물이어서 우리가 걸을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심지어 죽을 뻔한 길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가느다란 초록빛들에 감사하며 좁다란 길을 경쾌한 걸음으로 걷게 된다. 이런 봄이다.



너무 어려운 보통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로 열려 있고 어느 정도로 반응하고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걸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고 움직이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하고 돌아와 씻고 먹고 자는 그 모든 일이 매번 심호흡을 하며 해내야 할 정도로 너무 어려웠던 건 나뿐일까? 아무렇지 않은 듯 모든 걸 해내는 날조차 눈을 감을 때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뉴스 하나하나에 숨이 차도록 답답해지는 것도?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로 이 넓은 세상을 힘들어하며 마음 쓰며 살아가는 걸까?


누군가는 나를 예민하다고, 자기 연민이 과하다고, 자기주장만 강하다고, 너무 무겁게 산다고 지긋지긋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가 사는 법이고 사실상 어떤 측면에서는 훌륭한 동력이었다면 어떤가.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느끼며 살아내는 법을 알고 싶다.

세상 무엇도 나와 분리될 수 없는데, 모른 척하고 혼자 잘 살면 부끄러움에 두 뺨이 뜨거워지는데 어떡해? 남이라는 벽이 정말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떡해? 내 일이 아니다, 불편하다, 피곤하다, 가르치지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밉고 사실은 어느 정도 나도 그런 사람이어서 내가 더 밉기도 했다.


결국 누군가의 사랑에 아픔에 대해 싫으니 숨기고 살라고 말하거나 남일이라고 말하게 만드는 둔감한 보통은 닮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무서워하는 거겠지. 내가 닮아가버릴까봐. 그러니 좀 더 기울어지고 기울어져서 넘어지더라도 넘어진 그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있으면 한 번쯤 꽈당 넘어져서 생각과는 다른 감촉을 느끼며 땅을 짚어봐도 괜찮지 않나.


가끔 이렇게 답답해하다가도 계속 별나게 살자, 소소하게 다르게 살자, 부끄러워하며 살자, 그러곤 한다.



밤 산책


이 섬이 그리웠던 이유는 밤바다 때문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좋아서.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게 좋아서.

썰물 때라 파도소리가 다소 아득하게 들려오고 희고 붉고 푸른 색색의 별빛이 반짝인다. 일정한 풀벌레 소리를 배경 삼아 목을 빼고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별이 늘어난다. 내 생의 몇 배는 되는 시간을 건너온 작은 빛의 근원이 아직까지도 저 먼 우주에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오늘 밤 내게 닿은 그 빛은 아직 존재하지만... 어마어마한 질량과 중력을 지닌 바위나 가스 덩어리인 별이기보다는 광원으로부터 멀어져 그 긴 시간과 거리를 지나서도 살아있는 빛과 같은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그 빛은 어디에서나 찰나적으로 보이겠지만 별보다도 영원하다.




77일 차


아침잠


잠이 늘었다. 아직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침에 좀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흐린 날에는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빗소리를 들으며 계속 누워있을까 했는데 참을 수 없이 잠이 쏟아졌다. 아침을 챙겨 먹고 놀다가 다시 잠들고 또 잠들고 그러는 사이 날이 개었다.

온통 희뿌였던 세상이 다시 알록달록 해졌다. 단잠을 자고 기지개를 켜는 내 모습이 꼭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 같다.



하루살이


오전에 비가 많이 와서 여기저기 웅덩이가 고여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강한 태양이 땅을 굳혀주고 바위를 말려주어서 올레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계속 망설이고 주저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영화나 게임에서나 보던 모습처럼, 바위와 나뭇가지에 기대어 경사지고 위험한 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오르내리면서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계속 향했다.


동글동글한 돌과 파도에 휩쓸려온 나뭇잎이 발을 미끄러트리고 잡아당기는 길 위에서 작은 게가 돌 틈을 파고들고 녹색 이끼가 바위를 뒤덮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 꿈꾸었던 바다와 바위, 산이 어우러진 길. 그런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오래된 자연의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꺼려했지만 마지막에 내 걸음을 돌려놓은 건 경사진 바윗길도, 젖은 흙도, 야생화를 맴도는 벌도, 바위틈의 갯강구도 아니었다. 하루살이떼였다. 가장 짧은 생을 지닌 그 무리가 주저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아가던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주변을 둘러보느라 잠시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뒤로 돌아세웠다. 아주 오랫동안 저 길을 이루어온 모든 것들에는 피할 수 있는 위험들이 가득했지만 나무 터널 입구의,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떼는 위험하지 않아도 피할 수가 없다. 반드시 사이를 뚫고 지나가라는 듯 버티고 있어서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길을 내어주는 법은 긴 세월 동안 깨우쳐야 하나 보다.



휴식의 제단


올레길을 타는 사람들의 복장은 비슷비슷하다. 등산복이나 골프복 같이 통기성이 좋은 기능성 옷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스카프를 두르거나 종아리까지 오는 양말을 신기도 한다. 먼 거리를 걸어가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그들과 달리, 집 앞 산책을 나선 것이나 다름없는 나는 평소와 같이 편한 복장이었다. 물 대신 삼각대를 들고 돌아다니는 내가 다소 험한 올레길에 들어서기 위해 신경 쓴 거라곤 밑창이 둥글지 않은 러닝화로 갈아 신고 온 것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만 관찰자가 되고는 한다. 사람들이 주로 몇 명이서 함께 다니는지, 짝수가 많은지, 홀수가 많은지, 성비는 어떻고 나이대는 어떠한지, 어디서 쉬고 어디서 멈추며 어디서 사진을 남기는지. 그런 것들을 지켜보았다.


올레길 곳곳에는 걷는 이들이 세운 돌탑이 있는데 오늘은 누군가 귤을 놓고 갔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내가 길을 돌아오며 만난 이들 중 누구였을까? 유난히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주머니?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꽃을 찍던 아저씨? 반바지를 입고 홀로 걷던 청년? 또래들로 보였던 친구 무리?

저 귤들을 지친 후발주자에게 남겨준 것인지 아니면 새나 동물들에게 남긴 것인지 궁금했다. 혹은 돌 대신 썩어갈 귤을 제단에 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돌탑도 바람에 무너지는 줄은 모르고 사라져야 이루어지는 어떤 기원을 귤에 담아 가지런히 놓아두었는지도.




78일 차


돌아갈 곳

어젯밤 너무 늦게 자서 새벽에 달리러 나가는 대신 다시 눈을 감았더니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나갔다.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논문 발표에 참석했다. 발표하는 친구들, 선후배들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다들 얼마나 힘들게 준비를 해왔을까, 저 자리에 내가 서 있던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많이 힘들었지만 좋았다. 논문을 쓰는 일이 좋았다고 말하면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흘겨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정말 행복했다. 끝날 때가 되자 두렵고 힘들어서 더는 견딜 수 없어졌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소설에 대해 자유롭게 분석하고 쓰는 과정이 좋았다. 몰입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논문 쓰는 중이야.' 하면 다 되던 그런 날들. 아무도 내 일상에 대해 덧붙이지 않고 나 또한 그랬던 날들. 그 후의 내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되자 그동안 모른 척 참았던 아픔들이 터져 나왔다.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 1년을 보내고 나는 여기에 왔고 이전보다 잘 살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문명의 힘을 빌려 오랜만에 내가 속했던 세계를 엿보니 모두 반갑고 그립고 그랬다. 물론 약간 답답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는 소리보다는 다시 돌아가야지, 힘을 내야지, 하는 다짐이 앞선다.


어제 산책을 하다 산길에서 국가지정번호 표지가 풀들 사이에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걸 보고 오랜만에 이 번호들로 복권을 사볼까 싶었다. 마침 금요일이니 잘 조합해서 한 번 걸어봐야지.(하지만 집 근처에서 복권을 사려면 산책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한참 걸어가야 했으므로, 결국 나는 복권을 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다시 복권에 관심이 가는 걸 보니 미래라는 것이 다가오는 게 맞나 보다. 하지만 역시, 이제는 주저되거나 싫지는 않다. 내가 있었던 그 세계가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은 변치 않았고 그곳에서 다시 이곳을 돌아갈 곳으로 생각하겠지. 내가 속한 세계가 넓어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한때 유채꽃으로 가득했던 땅이 빈 공터가 되었다. 저녁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길가에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던 꽃이 져버렸다. 줄기만 남은 유채와 시들어가는 라일락, 이름 모를 관목들도 사라진 후였다. 세 달 동안 만개했던 꽃이 시들어가니 밀고 새 꽃나무를 심을 계획인 모양이다. 점점 말라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만발했던 꽃들이 지고 이젠 남은 줄기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니 마음이 허했다.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정리부터 해야 한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몸과 마음까지 그대로 납득하는 건 아니니까. 나를 반겨주었던 노란 꽃들이 사라진 길을 숨이 차도록 달리고 만세를 하며 고개를 돌리자, 어두컴컴한 바다가 모든 것을 삼킬 기세로 넘실대고 있었다. 때가 되었다고 경고하는 듯이, 고여 있는 것들을 다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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