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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현 Oct 11. 2022

79-81일 차 : 시선 속에서, 바다의 조각가

기다리는중,청바지의 청,바다산계곡밭,서로의 집,서건도,대화,정시의 배려

79일 차


기다리는 중


새벽부터 계속 날이 흐려서 맑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에 습기 속에서 달리기를 했고 근력 운동도 조금 했다 보니 오전 내내 어깨와 허벅지가 뻐근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밀린 설거지와 바닥 청소를 하고 맛있는 야채찜도 해 먹었다. 배앓이도 좀 하면서 앉아 있는데 아직도 날이 흐리기만 하다.


날이 풀리면 그제 다녀온 강정포구 쪽 산길을 걷고 싶다. 어젯밤처럼 밤 산책도 하고 싶고 보목리, 하효리에 다시 가서 섶섬과 검은 모래도 다시 보고 싶고 흑임자 빙수를 한 번 더 먹고 싶기도 하다.


일주일이 짧지도 길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비라도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



시선 속에서

네댓 살 된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바위틈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얀 원피스 아래 형광 장화를 신은 넌센스한 옷차림도 귀여웠다. 저 아이들에게는 희미해질 수도 있는 유년기의 추억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 내가 잊어버린 추억들도 누군가의 눈길 속에 살아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도 내게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나도 무엇이든 가능한 한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이 본 것에 집중하겠지만 나는 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죄책감마저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도 내게는 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지 못했던 무언가, 지나친 무언가를 다 보고 싶다. 그러므로 내 시선은 내 감수성의 밝고 어두운 면일 수 있겠다.


내가 보고 느낀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런 데서 오는 모양이다. 신의 시선 아래 만물이 존재한다는 버클리의 경험론처럼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시선 아래 존재가 결정된다면, 눈을 돌리지 않고 보지 못했던 것까지 치열하게 살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르기에. 내가 시선 앞에서 괴로워만 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청바지의 청


공기에도 무게가 있고 질감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습한 날에 청바지를 입고 나가면 착잡하고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찝찝함이 바지와 살갗 사이에 채워진 공기로부터 전해진다. 공기 중의 수분과 염분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감싸는 감각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 사실은 내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를 감각하는 건 또 재미있다. 나에게 다리가 있고 다리가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로 이루어져 있다니!

오늘은 약간 습기가 남아있지만 쾌청하다. 파스텔톤의 푸른색에 솜뭉치의 가장자리처럼 날리는 구름들. 하늘색은 이름부터 하늘색이라 물빛은 또 그 하늘색의 반사된 색채라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채도로 어느 정도 표현해볼 수 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습도와 무게로 오늘의 하늘을 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볕이 공기를 바짝 말린 날 하늘만큼 푸른 청바지를 입으면 가볍지만 날카로운 뜨거운 공기가 바지를 뚫고 허벅지에 닿고 내 몸에서 흐른 땀과 염분이 살갗을 스칠 것 같다. 산책하기 참 좋은 날이다.




80일 차


바다 산 계곡 밭

더 멀리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보지 않은 곳까지 멀리멀리. 바다에서 출발해서 산을 타고 계곡을 지나 밭길을 따라 큰길로 나왔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강정마을이지만 입구까지 간 걸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서건도 부근을 지나 마을로 가는 길은 리조트들이 있어서인지 잘 닦여 있어서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언제든 걸을 수 있는 길보다 걸어본 적 없는 산길이 더 좋았다.


바닷가의 산길은 재미있다. 나는 새들이 귓가에서 지저귀는 깊은 산속을 걷고 있는데 파도소리도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산, 들, 바다, 강, 논밭, 도로, 마을 모든 것이 다 있는 곳. 사막을 연상시키는 황무지만 있으면 내가 집터로 꿈꿨던 지형이다. 욕심이 많아 어른이 되면 다 가지고 싶고 만끽하고 싶었던 사춘기 시절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모든 걸 이룰 만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은 없다 보니 늘 뚱한 표정이었지. 나뭇가지 사이로 밀려오는 바다에 그 뚱한 표정을 흘려보내고 탄성을 질렀다. 비틀거리면서 바위와 흙을 밟아 부어오른 발, 당기는 종아리,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서로의 집


그동안 벌레에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덜렁이는 송충이에는 못 당하겠더라... 송충이를 피해 나무 아래가 아닌 바윗길로 돌아가려는데 바위틈엔 갯강구가 우글거리고 주변엔 하루살이와 각다귀가 떼를 지어 다녀서 여러 번 소리를 지르며 산길을 통과했다.

내가 내 집에 벌레가 들어오는 게 싫듯이 저들도 내가 자기들 사는 곳을 휘젓고 다니는 게 싫겠지. 그러니 최대한 모른 척 돌아가는 편인데 오늘은 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날이 좋으면 사람만 신나는 게 아니라 벌레도 신나는구나. 이런 데서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싶지 않았는데, 또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려니 싶어 져서 스스로를 다독이듯 심호흡을 했다. 물론 하루살이가 입에 들어갈까 봐 마스크를 올리고서.

그런데 송충이만큼은 정말 못 견디겠다. 거미줄 같은 줄에 기대어 나무에 대롱대롱. 딱 내 눈높이에...



썩은 섬, 서건도


너무 척박해서, 잘 썩는 응회암으로 이루어져서, 혹은 바다가 갈라지기 전에 물로 돌아가지 못한 고래의 사체가 풍화되어간 섬이라서, 다양한 이유로 '썩은 섬'으로 불렸다는 서건도. 서건도 앞바다는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고 칭해지는 바다 갈라짐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건도까지 이어진 바윗길은 매일 다른 시간에 열리고 닫힌다. 한 달에 열 번 정도 길이 생긴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딱 바다가 갈라진 때였다. 먼 옛날의 고래처럼 미처 깊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생명은 없었으면 했다.


저 멀리 내려앉은 해무 탓에 흐릿한 범섬, 비교적 선명한 서건도와 강정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먼 거리를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서도 다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런 탁 트인 시야는 도시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수평 선 뿐인 바다라면 어디의 바다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범섬은 내 추억의 중추다. 기억 속 수많은 바다들과 이곳의 바다를 갈라놓는 커다란 바위호랑이의 존재감. 반면 아름다운 만의 수평선을 반 이상 가려버린 해군기지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여기에서만큼은 그저 수평선과 서건도만을 보고 싶었다.




81일 차


대화

"야! 난 게으르지 않아!"

가장 먼저 그렇게 외쳤다.


목표를 달성한 후로 당장의 목표가 사라졌다. 날은 더워졌고 해는 너무 일찍 뜬다. 아침부터 제습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습하고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고 불면증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취침 시간도 기상 시간도 늦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 속에서도 꾸역꾸역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보니 이 모든 걸 또 나의 부족함으로 돌리려는 나쁜 목소리가 스멀스멀 깨어나지 뭔가.

그래서 오늘 자유롭게 달리다가 문득 소리를 질렀다. 바닷물이 높이 차올라 반쯤 사라진 여의 끝에서, 바다와 해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언제나처럼 일방적이었다. 내가 뭐라고 하든 무심하게 신발 밑창을 적시며 밀려오는 파도는 철썩 소리를 내며 나에게 물장난을 쳤다.

"그래, 가라는 거지?"

심통 난 아이처럼 물방울을 맞으며 묻다가,

"그래, 이제는 들어주는 걸 넘어 대답도 해주는 사람들 속으로 가야지. 그래도 돌아오면 나를 품어줄 거지?"

했다.


또 한 번 파도가 쳤다. 닿을 듯 말 듯 , 내가 디디고 선 길을 반쯤 덮으며.



정시의 배려


비가 안 오면 제지기오름에 또 갈 생각이라 된장국에 밥을 든든히 먹었다. 아침 내내 하늘을 살피다가 저녁 전까지는 맑을 것 같아 뛰쳐나왔다. 어마어마한 조경과 넓은 부지가 부러운 초등학교 건너편 정류장인데 20분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버스 배차간격이 죄다 길어서 주요 정류장 배차 시간표가 아예 붙어 있는 데다 대강 가늠해 보아도 꽤 잘 지켜지는 편이다. 승객이 적은 정류장이다 보니 사람이 있으면 일단 문부터 열어주고 보는 게 버스 놓칠 일은 거의 없겠다. 그래서인지 드물게 승객이 있어도 탈 시간 맞춰 나오지 미리 나와 기다리는 사람은 잘 없다. 나 홀로 정류장을 지켜야 했다.


여기는 고령 인구가 많고 유소년 인구가 귀해서 버스 운행 문화가 매우 친절하다. 내가 일어서 있지 않아도 버스를 탈 승객일 수 있다는 걸 당연시하고 기다려주기 때문에 열린 문 사이로 눈짓으로, 목례로 안 탄다고 말해야 했다. 하차할 때도 승객이 일어서서 대기하지 않아도 기다려준다. 급하게 운행하는 탓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미리 일어나 서서 대기하면서도 문이 닫힐세라 급히 내려야 하고 그러다 다리에 멍이 드는 일이 잦았던 서울 시내버스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렇게 승객들을 기다리지만 결코 밀리지 않고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들. 당연한 일이 정말 당연하려면 역시 여유가 필요한 모양이다.



바다의 조각가


검은 모래 해변에 또 방문했다. 날이 궂어서 파도가 높았다. 파도소리는 더욱 선명했다.

부드러운 검은 모래는 신비롭고, 맨질맨질한 돌멩이들은 마치 공룡알 같다. 땅이 낳고 바다가 파도로 품은 알. 수천 마리가 태어나도 살아남는 건 한 마리뿐이라는 거북이의 삶처럼 저 돌멩이들이 모두 생명이 되더라도 바다 깊은 곳으로 돌아가는 건 단 한 마리 일지도 모른다. 형제들의 목숨을 등에 지고 홀로 아주 긴 세월을 견디는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해변의 신비는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를 잔해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돌멩이만큼이나 반질반질한 나뭇가지들, 이번에는 미리 큰 나뭇가지 두어 개를 손에 집었더니 거친 표면이 하나도 없었다. 다듬어진 게 분명했다. 누군가 사포로 신경 써서 다듬은 것마냥 매끈했다. 바다가 조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파도는 정말 훌륭한 조각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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