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 바람과 몸, 덜 유해한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바람과 몸


섬에서 하고 싶었던 일 중에 운동이 있었다. 그냥 운동도 아니고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요즘은 좋은 어플이 많으니까, 어디서든 혼자 뛸 수 있도록 이 해안에서 초보 주자가 되어서 돌아가야지 하는 포부를 가지고 내려왔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자니 이 몸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체력단련 삼아 걷기 운동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것도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될까봐 격일로 진행하고 있어서 하루는 편안하게 산보를 하고 하루는 인터벌 걷기를 하기로 했다. 오늘은 각 잡고 걷는 날. 발목도 무릎도 좋지 않기 때문에 무겁고 굳어있는 몸을 잘 풀어줄 필요가 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명상 겸 스트레칭 겸 요가를 하고 해 뜨기 전에 출발했더니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운동이 끝났다.


해안을 오른쪽으로 끼고 걸을 때는 시원했는데 해안을 왼쪽으로 끼고 걸을 때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두 뺨이 얼얼했다. 아직 겨울이니까 차갑고 거친 바람이 분다. 바람으로 유명한 이 섬에서도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로 손 꼽히는 곳이 이 법환마을이라고 한다. 바람에 몸이 휘청이기까지 했다.


바람을 헤치며 걸어가는데 양 다리 각각에 들어가는 힘이 달라지는 그 감각이 신기했다. 바람에 기울어지는 몸을 세우려니 어쩔 수 없이 비대칭이 되는 좌우 균형, 그 비대칭의 힘으로 바르게 선 나의 몸. 그렇게 바람으로부터 몸 쓰는 법을 배웠다. 몸이 좀 나아지면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해봐야지, 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또 달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니 휘청이는 걸음이 즐거웠다.



덜 유해한


낮에는 미리 알아두었던 비건 빵집에 들렀다. 이 섬에 오기 전에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이 섬과 마을을 단순 관광지로 소비하지 말 것. 모든 것을 지나치는 풍경으로 흘려보내지만 말고 관심을 갖고 대하며 가능하다면 이 곳에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해치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줄일 수는 있다. 완전한 비건주의를 실천하긴 어렵지만 외식하지 않고 육식을 줄이고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장을 필요한 만큼만 봐와서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일도 없게끔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 식생활의 변화를 위해 미리 비건 빵집을 지도에 표시해두었다.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식사빵과 야채찜의 조합은 1인 가구가 해먹기에 손색 없는 간단한 밥상이기 때문이다. 빵집에서 올리브 치아바타와 녹차식빵을 샀다. 모두 유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빵이었다. 약간 뻣뻣해보이지만 살짝 데워서 양배추찜이랑 함께 먹으면 거친 식감을 싫어하는 나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촉촉하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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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를 최대한 쓰지 않기 위해서 얼마 되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매일매일 버리고 그렇게 재활용한 플라스틱 용기는 깨끗하게 씻어서 분리수거 한다. 빵집에서는 빵을 얇은 종이 봉투에 담아주는데 그 종이 봉투는 일반 쓰레기나 종이를 모으는 용도로 쓰고 있다. 아무래도 쓰레기가 적게 나오고 직접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모으지 않고 바깥 분리수거장에 있는 큰 종량제 봉투에 일반 쓰레기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담아갈 봉투로 비닐봉지를 쓸 수밖에 없나 고민을 했었는데, 이렇게 큰 쓰레기들에 작은 쓰레기를 차곡차곡 담아 버리니 걱정을 덜었다. 과자봉지나 두부 포장 용기 같은 것들을 각종 쓰레기 담는 용도로 재활용하니 바로바로 쓰레기 버리기도 좋고 아주 편하다.


물을 계속 사먹어야 하면 그 플라스틱을 다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사무실에 정수기가 따로 있었다. 텀블러에 물을 잔뜩 받아다가 요리할 때도 쓰고 음수로도 쓰고 하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또 정기적으로 빨래할 거리가 속옷이나 양말 외엔 거의 없어서 커다란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도, 세제를 잔뜩 쓰는 것도 낭비 같아 세탁 비누를 샀다. 정확히 재료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친환경 재활용 세탁 비누...? 같은 것이 있었다. 물을 받아서 손 빨래를 하니 나름 괜찮은 듯하다. 조금 귀찮지만 몸이 고생하면 자원을 아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나는 무해하지 않다. 하지만 조금 덜 유해한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섬의 생태계와 풍경을 대하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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