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물건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는다. 겁이 많았던 소녀는 열쇠고리 같은 것을 좋아했다. 특히 빛이 나거나 소리가 나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그렇게 물건의 존재감이 강할수록 스스로를 더 잘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야광 팔찌를 좋아했고 측면의 버튼을 누르면 야광 불이 들어오는 시계를 보물처럼 아꼈다. 언니와 싸워서 어두운 복도에서 벌을 서곤 했을 때 그 시계의 불을 끊임없이 켰다 껐다 하면서 어둠 속에서 킬킬 웃곤 했다.
지금도 나는 물건의 존재감을 믿는다. 장신구를 좋아하지만 잘 바꾸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엄마와 친구들, 언니, 그리고 내가 마음을 담아 고른 물건, 손때 묻은 물건들은 나를 지켜주고 외롭지 않게 한다. 마음이 담긴 사물에는 분명 공간을 집과 같은 장소로 영토화하는 능력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타는 것도 너무 너무 무서워했던 사춘기 소녀는 처음 생긴 슬라이드폰을 밀어 올리고 내리고 반복하면서 엘리베이터가 11층을 향해 가는 그 몇 초의 긴장되는 시간을 버텼다. 그 시절로부터 한참 지난 지금도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선물해준 물건이나 스스로 의미 있게 여기는 물건을 만지작 거리며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낸다. 마음이 담기면 모두 다 내겐 부적이다.
땅끝의 여
내가 또 좋아하는 것, 바로 경계지대다. 늘 경계를 꿈꿔왔다.
땅끝마을 해남에 매혹되었듯 지금은 이 섬의 최남단에서 먼바다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에 나는 땅끝을 사랑한다. 이 섬에 온 이유도 그런 것이긴 했지만 섬의 최남단인 이 해안에 머무르게 된 건 우연이었다.
그리고 이 해안에는 밀물 때면 바다가 되고 썰물 때면 길이 되는 바윗길이 길게 뻗은 '배염줄이'라는 곳이 있다. 제주 방언으로 '여'는 수중 암초나 곶처럼 바다로 돌출된 땅을 이른다. 바다였다가 길이었다가 하는 바위들 위를 걷거나 반쯤 물에 잠긴 여를 쉼 없이 핥듯이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바닷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밀물 때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가 썰물 때가 되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길을 따라 돌아오면 되지 않을까. 바닷속으로 향하는 길은 그 어떤 경계보다도 강한 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렇게 우연도 나를 땅끝으로, 바다의 시작으로 이끌었다. 아마도 이 여행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라는 바다의 뜻이 아니었을까.
너는 바다로 갈 수 있다고. 바다는 너를 환영한다고. 하지만 언젠간 반드시 발길을 돌려 땅으로 돌아가라고, 수평선에 묻혀 종종 잊히기도 하는, 이 섬의 끝에서.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나희덕, 땅끝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