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체온
어제 종일 쉬고 오늘은 새벽부터 열심히 움직이고자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보니 해가 뜨기 전이었고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부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달리기를 하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숨이 차오르면서도 와! 하고 소리를 치고 싶은 고양감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겨울이다 보니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가야 할지 매번 고민이 된다. 일단 껴입고 나가는 편이다. 운동을 해서 열이 나면 겉옷을 벗어던지고 싶어 지곤 하지만 체온을 빼앗기면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굳어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절대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으니까. 그리고 지난번보다 안정적으로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기억할 것. 걸음보다 속도가 느려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오래 달리는 데 있다는 것. 지구력을 키우고 호흡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달리기를 하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급해할 것도 없고 오직 나만의 싸움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강한 바람도 괜찮다. 내가 대항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상쾌할 수 있다.
검은바위들의 바다
운동을 하면서 비가 막 쏟아질 것 같은, 구름에 가려 일출도 볼 수 없는 그런 하늘 아래 바다를 보니 여러 변화가 보였다. 낮게 나는 새라든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햇빛이라든가, 습기를 머금은 묵직한 바람이라든가, 높아진 수위와 아주 큰 파도소리라든가.
처음 본 그날만큼 바다의 수위가 높았다. 거센 파도는 공격적이고 바람은 세상을 뒤흔든다. 흐린 하늘의 거울인 바다 역시 어둡고 시린 색이다. 매일같이 밟는 여가 반쯤 바다 밑으로 사라진 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파도에 잠기는 그 길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요즘 수위가 높아 반쯤 드러나 있던 녹지대도 완전히 잠겼다. 검은바위들의 바다가 돌아온 것이다.
문득 우리 때문에 이 이상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여기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극의 생명들이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이, 몇 배로 우리는 값을 치르게 될까? 인간으로서는 슬픈 일이지만 그래야 할 것이다. 물론 전 인류의 눈물로도 오랜 역사의 값을 치를 수는 없겠지만 있는 힘껏 슬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인류에 대해, 변화에 대해 개의치 않을 것이다. 분명히.
비를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와 후들거리는 다리를 풀어주고 휴식을 취하다가 예정대로 집안일을 했다. 미뤘던 옷 정리를 하고 청소도 하고 밥 먹고 다시 누웠다. 솔직히 말해서 침까지 흘리며(?) 낮잠을 자고 나니 내가 너무 게으른가 하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해야 할 일을 부과하고 더 성실한 삶을 요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내가 오늘 하겠다고 했던 건 달리기, 집안일, 그리고 밀린 일기 쓰기였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글을 쓰고 있으니 오늘 할 일은 정말 다 한 것이 아닌지? 내가 꼭 바쁘게 살아야 할 일은 없고 빈둥빈둥 지내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하루 종일 시원하게 비가 내리기를 기다렸는데 끝내 소나기는 오지 않을 것인가 보다. 알게 모르게 조용히 내린 비는 기다렸던 소나기와는 달랐다. 비가 오면 좋겠다. 왜인지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파도소리만큼이나 큰 소리로 다가오는 장대비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