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결벽
신기하게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면서 생각했다. 달리고 싶다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실행하진 않았지만 어제처럼 오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물론 달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느지막이 일어나게 되어버렸지만... 변명을 하자면 어제부터 배가 좀 아팠다. 그래도 10시쯤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11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들렀다 들어올 생각으로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날이 춥지 않아서 좋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쌀쌀하더니, 날이 개이기 시작하자 다시 또 따뜻한 햇볕이 지상을 데웠다. 바람도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옷을 가볍게 입고 나갔는데 마주하게 된 것은 가까운 바다. 물에 잠긴 바윗길.
여기 온지도 꼭 2주째 되는 날이지만 아직까지 바닷물에 발을 들인 적은 없다. 오늘만큼 바다에 가까이 다가간 것도, 예상치 못한 큰 파도에 신발 밑창이 젖은 것도 처음이었다.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고 젖은 바위를 쓰다듬어 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이런 데서 나의 조심스러움이 조금 원망스럽다. 별로 깨끗한 편도 아니면서 외부에서 오는 더러움은 잘 참지 못한다. 스스로의 단점이나 문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을 '꼬인 부분'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말로 설명해보려고 애쓰곤 하는데 이런 이상한 결벽은 어떻게 다르게 말하고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바다새
해수면이 높아지니 바다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이웃들도 가까워졌다. 수많은 새들. 많은 새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크고 작은 이웃주민들이 바닷물을 따라 해안 가까이로 다가와 있었다. 거친 파도에도 개의치 않고 둥둥 떠다니는 새들을 보니 여기가 우리 동네 파도풀인가 싶기도 했다.
바다에 손발을 살짝 담그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바다새들이 더욱 이채로웠다. 정확히는 이방인은 내 쪽이지만...
새들의 사진도 정말 많이 찍었다. 잘 담기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게 새 사진이라는 것을 안다. 해수면이 아무리 높아져도 잠기지 않을 만큼 높이 솟은 자그마한 바위섬을 거처로 삼은 물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어떤 사람들이 새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지 알 것도 같다.
"저 새들이 다 죽어버린 후에?" 하며 못마땅해하던 한 소녀가 떠오른다.(『시선으로부터』) 그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침이었다.
염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날이 더워서 얼른 옷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조만간 기온이 떨어진다던데 이 동네 날씨는 많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턱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곤란해하고 있다. 얼른 전문 치과에 방문해야 하는 걸까.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디스크일지도 모른다. 디스크라면 어쩌지? 몸이 후들거리는 저녁이 반복되어서 나는 저혈당이나 그런 병들을 걱정하기도 했었다. 어제도 오늘도 두통이 심하기도 했다.
별 일이 아니면 좋겠다. 나는 아픈 것이 두렵다. 어떤... 시작되려는 나의 삶을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