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차 : 악, 다시 기원, 듣는 수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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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나쁨. 그래도 달리러 나갔다. 모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고 시원한 물을 떠왔다. 바람이 시원했고 하늘은 산호빛이다. 낮게 드리운 구름 속에서 떠오르는 해는 보다 붉게 타오른다. 해가 뜨지 않는 아침은 없다.


민감하고 내성적인 사람에게 박한 이 세상에서 나는 자책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미신을 믿는 법도 배우며 자랐다. 보다 잘 자책하도록. 흐트러진 발걸음조차 문제의 원인처럼 여기도록 말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모두 내 탓 같았다. 나 때문일까? 내가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 내가 선택을 잘못해서? 내가 공기가 좋지 않다고 하루 칩거해서? 내가 악몽을 꿔서? 내가 달리지 않아서?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자 온몸에서 더 강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내 탓이냐? 니 탓이지, 안 죽어, 안 망해, 난 살아있어! 나 망한다는 말 진짜 싫어, 내가 살아있는데 뭘 망해! 야! 야!


근래 쌓인 울분이 터져 나왔다. 험하고 말 많은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바닷가에 사니 좋은 점이 추가되었다. 얼마든지 소리 지르고 악을 써도 된다. 아무도 없는 바당길을 달리며 차오른 숨을 뱉어내듯 소리를 질렀다. 내가 쓴 소설 속에서 생리대를 손에 쥐고 길을 걸었던 그 여자처럼, 남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그 작은 몸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어 보이는 커다란 소리로 폭소하는 여자처럼. 조용했던 나에게도 이렇게 타오르는 분노가 있고 열이 있고 의지가 있구나 싶다.


실컷 소리를 지르며 달리고 나니 힘이 넘친다. 분노는 나의 힘. 나는 나를 괴롭히는 세상을 미워할 권리가 있고 그보다 더 강하게 사랑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누군가는 가치를 잊은 사랑이 있고 정결한 분노가 있다. 몇 달 간의 스트레스가 좀 해소되었다. 내일이 어떻든 힘이 났다.



다시 기원


실컷 성을 내고 돌아오는 길, 언제 소리를 질러댔냐는 듯 순식간에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걷다가 돌탑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거센 동네라 바람이 불면 매번 돌탑들이 무너진다. 꽤 크고 평평한 돌들도 섬의 거센 바람에는 장사 없다. 조끼 패딩이 안쪽에 들어찬 바람 때문에 부풀어 올랐다. 낙하산이나 돛처럼 한껏 부풀어서 제자리 뛰기를 하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푼 옷을 입고 휘청이며 걸어가자니 온몸의 감각이 선명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바람이 부는 이 해안에 계속해서 돌탑을 쌓는다. 어제 봤던 탑이 사라진 자리에 또 새로운 탑이 생기고 그 탑이 무너진 자리에 또 누군가 돌을 얹는다. 그렇게 반복되고 반복되는 탑 쌓기는 언제나 이 바닷가를 기원의 땅으로 남겨둔다.


매일 해가 뜨고 지고 썰물과 밀물이 반복되는 곳. 그럼에도 매번 내 눈에는 다른 하늘이, 다른 바다가, 다른 세상이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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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올려둔, 바람 한 가닥에 바로 무너질 것만 같은 기원의 돌. 저 돌은 얼마나 버틸까? 또 누구의 기원이 그 자리를 대신할까? 바람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의식을 위해 불어오는 걸까.



듣는 수다


스트레스가 쌓이긴 했는지 간만에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었다. 배달음식을 먹었는데 원래는 잘만 먹던 양의 반을 겨우 먹고 배가 불러서 벌떡 일어나 산책을 시작했다. 오늘도 해녀마켓 담장에 앉았고 바람을 쐬며 유튜브 수다 방송을 들었다. 그 한가로움이 참 좋았다. 지는 해를 등지고 바다를 보며 앉아 있으니 사춘기 때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던 기억이 난다. 밤마다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나의 라디오 친구! 아무도 모르는 신인 가수나 인디 음악을 자주 소개해주고 토요일마다 다른 그룹원들을 손님으로 불러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소리 지르고 노는 디제이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는 날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다 친구잖아!"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하는 유튜버들의 말에 왜인지 웃음이 났다. 우리가 그렇게 얼굴도 모른 채 목소리만으로 서로를 친밀하게 대하며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니 기쁘다. 왜 눈을 마주한 사람보다 귀로 만나고 익명의 댓글로 만나는 인연이 더 진실되게 느껴지는지. 어딘가에서 스칠 수도 있는 그들이 어떤 사람일지라도 지금처럼 서로를 대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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