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뿌리
어제 폭풍 속에서 과식하고는 체해버렸다. 밤에 홀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있으려니 서러웠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한테 아프다며 어리광을 부렸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심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다. 교환학생을 가서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심한 감기몸살에 시달려 사흘 정도를 내리 누워만 있을 정도로 앓았을 때는 엄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차마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서도 실은 많이 아팠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너무 많은 일에 시달려 힘들고 괴로웠을 때도 나는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지척에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고 내 우울의 깊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짓말을 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약해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하지만 그게 후일에 엄마에게 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말하고 전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금방 지나갈 아픔부터라도 조금씩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침이 되어도 체기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내 말에 엄마는 죽 먹고 가만히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걱정 섞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나가서 좀 걸으면 좋아질 텐데. 오늘 달리기는 무리지만 몸 때문이 아니라 강풍 때문에 무리야. 대신 많이 걷고 와야지.
그래서 폭풍이 휩쓸고 간 해안을 걷고 또 걸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산산조각 나면서 씻어 말린 솜처럼 하얗고 보송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바다는 그런 조각난 하늘을 비추기엔 더 많이 조각나 있었다. 파도가 거칠어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유채꽃은 아프면 더 꼿꼿해지는 나와 같았다. 어제의 그 난리에 뿌리가 뽑혔어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텐데 가느다란 줄기를 길게 뻗은 유채꽃이 몸통이 굵은 나무만큼 굳건히 서 있었다. 강한 바람에 땅에 닿을 듯 흔들리고 눕기도 했지만, 어떤 줄기는 자국이 남도록 누웠지만, 가장 처참한 무리에도 꺾인 꽃은 없었다.
내가 유채꽃이라면 어제 그 비바람을 타고 도로시처럼 어딘가로 날려가 버렸을 텐데 모두들 뿌리내린 그 자리에 흔들리고 누울지언정 여기 남았다. "나는 모투누이에서 온 모아나다."라고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도 끝없이 주장하던 바다의 소녀처럼 나도 돌아갈 섬이, 뿌리가, 고향이 있기를 늘 바랐다.
거울바다
매일매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의 빛깔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도 다르다. 올레길 바로 목전까지 차올라 바위 해안을 다 덮어버린 바닷물은 옆 마을 쪽으로 갈수록 동해바다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띤다. 긴 해안에서 한 편의 바다에만 옥빛이 감돌고 그 부근에서는 땅에 고인 빗물에도 흐린 하늘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 비친다.
바다는 하늘의 거울이고 빗물은 그런 거울을 땅에도 잠시 만들어 하늘에 사는 누군가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게 해주는 게 아닐까? 오직 반사된 것만 볼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말이다.
질주
높은 파도가 줄을 지어 밀려오면 마치 물빛 산맥들이 질주하는 것 같다. 그 산맥들은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이 압도해온다. 절벽에 서서 파도를 내려다보는 나에게도 그들의 땀방울이 튀고 이대로 질주하는 산맥에 올라타 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도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삼켜져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갔다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센 폭풍이 오는 날, 산맥을 타고 섬을 지나 뭍으로 돌아갈 거라는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