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가볍게
한 번에 뛰는 시간이 2분이 넘던 날 이 훈련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5분을 연달아 뛰고 있었다. 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차고 눈이 감긴다. 나는 참고 견딜 때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을 때도 눈을 감는 모양이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나 남아있는 잔상처럼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숨이 찰 때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걸 더 생생하게 감각하기 위해 눈을 감았나 보지.
준비운동을 하며 하루가 시작되고, 이렇게 뛰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1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 일상이 너무 가벼워서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것을 내던진 지금이 좋다.
다 지나고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지갑이 홀쭉해졌지만 나는 망하지 않았고 죽다, 라는 실행 불가능한 동사를 농담으로라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으며 어떻게든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것이고 모든 것을 계속할 거라고. 살아낼 것이라고.
재래식 만찬
펜션의 다른 숙박객인 어른들께서 준비해주신 자리에 사장님들께서 나도 초대해주어 예상치 못한 만찬을 누렸다.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이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사장님께서 직접 하신 반찬들이었다. 집 앞에 핀 유채꽃을 그대로 따다가 깨끗하게 씻어 데친 나물을 처음 먹어봤는데 청경채와 맛이 비슷했다. 엄마도 종종 해줬던 고추쌈장으로 취향껏 간을 맞춰 먹으니 유채꽃 나물은 아주 밥도둑이다. 소금간을 좀 해서 비빔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겠다.
댕유자 실물도 처음 봤다. 손바닥보다 큰 댕유자는 이 섬의 재래종인데 씁쓰름한 맛 때문에 먹을 수는 없지만 약재로 쓰이는 귤이다. 실제로 오일장에서 약초 파는 할머니들이 댕유자를 함께 판다고 한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천연 감기약으로 댕유자차를 마신다고도 하셨다. 사장님도 임신 중에 즐겨 드셨고 지금도 몸이 으슬으슬할 때 꼭 찾으신단다. 듣고 나니 삼춘이 나한테 진짜 귀한 청을 선물해주셨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외에도 제주 사람들의 경조사의 특징이라든지 그 특이성에 반영된 육지와는 다른 여자들의 어떤 지위라든지, 다르지 않은 시집살이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여럿인 집이 예전에 많았다든지 하는 이야기,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의 의미에 대한 시각 차이라든지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오일장에도 데려가 주신다고 하셨다. 사람 만나고 함께 하는 일을 많이 어려워하는 나지만, 데려가 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