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 차 : 꽃 피는 계절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꽃 피는 계절


그러니까, 나는 매일매일 쉬는 날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히는 날이 필요하다. 먹고 자는 것조차 마다하고 싶은 그런 날, 정확히는 침대에서 허리 디스크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속에서 이율배반적으로 한껏 안락해하는 그런 날. 요즘 식욕도 돋아서 한껏 살이 오른 볼따구를 진정시키려면 과자를 좀 줄여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과자를 밥 대신 주워 먹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과자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역시 가만히 시간을 보낼 때 가장 생각나는 건 과일이더라. 특히 귤. 이제 귤도 철이 다 지나서 열매가 아닌 꽃이 피는 시기가 왔다고 한다. 생각도 못했다. 열매가 맺히려면 꽃이 피어야 하는데 귤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평생 잊고 살았다. 아주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자주 잊거나 생각하지 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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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이라 말랑말랑해진 귤들은 시거나 싱거울 수 있다. 내가 침대에 처박혀 미리 씻어두었던 마지막 귤들을 해치우는 동안 귤나무에는 새싹이 자라고 봉오리가 돋아 꽃을 피울 것이다. 다음 열매를 위해서.


여기는 벚꽃이 가장 먼저 피는 섬. 완연한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기쁨을 맞이하기 전, 동굴에서의 마지막 날을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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