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일 차 : 탄력성, 깃털, 바람의 말 바람 속의 말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몸과 마음의 탄력성


달리기는 체력, 근력, 유연성을 향상시킨다. 물론 유연성은 전후로 틈틈이 늘려주기도 해야 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역시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보상은 탄력성이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의 부분 부분이 굳어 있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찌뿌둥한 감각이 아니라 몸이 덜 깬 상태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둘이 뭐가 다른가 하면, 몸이 깨어나면 예전과 같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다르다.


그렇다. 운동은 내 몸을 믿게 되는 일인가 보다. 알아가고 더 나아지게 하고 마침내 믿어주는 일이다. 아직 연약하고 부족한 몸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주고 설령 오늘은 좀 나빠지더라도 내일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 일. 그런 탄력성을 기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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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성질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호흡하고 반동이 아닌 근력으로 몸을 움직인다.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고 천천히 내쉰다. 이제는 달리면서도 차오르는 숨을 다독이고 안정시킬 수 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조금 늘어났다.



깃털


예쁜 새를 발견했다. 배는 붉은빛이 도는 갈색이고 몸은 청회색이다. 신비롭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빛깔을 가진 동물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여러 빛깔이 배색된 것이 아니라 깃털 하나하나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섬세한 빛으로 잔잔한 색의 흐름을 만든다. 거울 같은 바다와 달리 새의 깃털은 그 자체로 여러 빛을 낸다.


어느 날엔가 긴 다리를 가진 새가 사라졌고 저녁이면 저 푸른 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새였던 걸까. 참새나 멋들어진 까마귀와 달리 물새는 만날 날이 정해져 있나 보다.


깃털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빛깔로 맵시 있는 옷을 직조해내듯, 자연은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 온 감각을 활짝 열어두면 나도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바람의 말, 바람 속의 말


낮에 제주삼춘과 남사장님이 사람들을 모아 자리물회와 자리돔 소금구이를 대접하셨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대접해주신 거라 감사히 먹었다. 자리물회는 고수도 들어간 것 같고 원래 시큼 시원하게 먹는 거라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냉면 좋아하고 회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맛이었다. 식초로 간을 한다는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나에게는 굵은소금에 구운 생선이 입에 맞았다. 원래는 고등어나 삼치가 아니면 생선구이도 거의 손대지 않는 편인데, 비린내 하나 없고 부드러운 맛에 놀라 돔을 싫어하는 내가 손바닥 반 만한 생선을 두 마리나 먹었다.


그 자리에 이십 대는 나뿐이고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셨는데 다들 이 섬의 볕 아래 살아오신 분들이라는 걸 증명하듯 단단해 보이는 갈색 피부와 선명한 주름, 작은 체구를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바람에 먹히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치는 듯한, 빠르고 생략된 것이 많은 듯한 그런 소리로 다가왔다. 나는 오가는 대화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내 이름조차 바람처럼 스쳐가서 여러 번 듣고서야 날 부른 걸 알았다.


홀로 저녁 산책을 나오니 이 섬의 말을 만들어낸 돌풍이 귓가를 스쳤다. 어우러진 파도소리도 결국은 바람소리의 연장이 아닌가. 나무, 꽃가지, 물을 흔들고 내 온몸을 훑으며 강하게 속삭이는 바람의 말은 바람 속에서 오가는 말들처럼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오늘도 나를 웃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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