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차 : 작고 사소하고 경이로운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작고 사소하고 경이로운


처음에는 펼쳐진 풍경에 정신이 팔려 하염없이 걸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작은 것들, 처음에는 눈여겨볼 겨를이 없던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물길이 막힌 바위틈에 새긴 얕은 호수를 들여다보다 아주 작고 재빠른 움직임을 포착한 건 그런 변화에서 비롯된 일이다. 만지면 물컹거려 오소소 소름을 돋게 하면서 손아귀를 빠져나갈 것 같은 검고 미끈한 생명체가 돌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약간 징그러우면서도 신기해서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더니 크고 작은 비슷한 생명들이 뾱하고 나타났다가 스르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봄기운이 개구리를 깨우듯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이끼와 해초들이 이들을 불러들인 모양이다. 그 어디에나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위안이 된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크고 장엄한 것보다 더 경이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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