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차 : 얼굴들,액자,책상이 있는 방,젖은 운동화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얼굴들


매일 보던 것도 갑자기 생경할 때가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바위들이 산책로와 절벽 사이에 늘어져 있고 해가 떠오르자 울퉁불퉁한 그림자들이 드리웠다. 그 대중없는 그림자의 나열이 왜인지 얼굴들 같았다. 얼마 전에 주상절리를 봤는데 꼭 누가 조각한 것처럼 기둥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꼴인 기이한 절벽이었다. 듣던 대로 꼭 이빨 같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 공원.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각자의 각도로 자랐지만 면면은 반듯한 이빨들이 아니라 그 앞의,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들쑥날쑥한 바위들이었다. 깎여나간 바위들이 만들어낸 그림이 꼭 얼굴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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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얼굴들의 모임은 언제나 절규나 분노 같은 감정으로 독해되곤 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조각조각 깨어질 것만 같고 아플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본 얼굴들은 결코 깨지지 않을 듯이 견고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이유 없이 애상적이기도 했다. 내가 실수할 때마다, 아니, 실수하기도 전에 떠올리던 익명의 군중들, 그들의 시선이 떠오른다. 그 시선은 처음에는 날카롭고 서늘하다가 점차 단단해져 간다. 아는 사람들의 얼굴로 변해가는 군중들, 그들은 절대 파고들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낯으로 나를 보며 한껏 실망하고 있다. 그 얼굴들이 두려워서 나는 시작도 전에 많은 것을 포기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늘어선 얼굴들은 아무리 단단해도 슬프고 아프다. 그러나, 그 얼굴들이 나로부터 돌아서는 순간이 더 무섭다. 지루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냐고 하면 더 아프다.


그래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기로 했다.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내 글을 읽어나가고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읽어나가는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단호해질 것이다. 마침내 고개를 들면 날카롭지도 단호하지도 않은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기를 바라며 땀이 차는 손으로 종이를 생명줄처럼 부여잡고 나는 계속 읽어나가겠지. 내가 두려워하고 아파하면서도 주상절리를, 그 얼굴들의 환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얼굴들을 기대해서였다. 분명 내가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소중한 이들은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주상절리는 아름다웠고 그림자들은 표정 없이 일렁이며 영감을 주었다.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분명 고개를 들면, 다시 이 섬에서 내 자리로 돌아가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액자


섭지코지에 있는 건축물에 대한 다큐를 봤는데 노출 콘크리트와 미로 같은 개방형 복도를 활용하여 제주의 풍경을 액자처럼 담아내는 건축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노출 콘크리트를 잘못 활용한 사례들을 보면서 꼭 버려진 공장처럼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제대로 활용하고 제대로 마감을 하면 무척 매력적인 디자인이구나 싶었다. 제대로 된 건축이나 실내디자인에는 정말 많은 예술적, 철학적 사유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런 건축물은 사람들이 그곳을 거닐거나 그곳에서 생활하면 그 의미가 달라지거나 깊어진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물론 설명 없이는 아무리 봐도 봐도 나는 잘 모르겠다는 게 아쉬운 지점.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


산책을 하다 이름 모를 열매를 발견해서 자연스럽게 멈춰 사진기를 들이댔다. 나무 울타리 아래쪽을 감고 자라 있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울타리에 둘러싸인 범섬이 함께 사진에 담겼다. 경사진 곳이라 범섬과 수평선이 기울어져 버렸는데 쏟아지지 않는 바다를 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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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망졸망한 열매와 울타리, 그 너머로 보이는 기울어진 바다. 구도가 엉망인 이 사진을 크게 현상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느 날 사진 속 바다가 쏟아지면 나니아연대기의 한 장면처럼 액자에서 흘러넘친 바닷물을 타고서 이 해안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진을 보면서 매일매일 기울어진 바다의 파도를 타고 이 섬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랄 거야.



책상이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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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장님이 새 가구들을 바로바로 내 방에도 넣어주셨다. 예전보다 높고 편한 탁자와 안락의자, 깔끔한 협탁이 생겼다. 드라마 하이킥 시리즈의 여자 방에는 책상이 없어서 여성들이 화장대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가구는 정말로 중요하다. 사람의 행동을 좌우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괜히 자기만의 방에 대해 썼겠는가. 놀라운 작품을 쓴 여성 작가들이 자기 방이 없어 거실에서, 부엌에서 웅크리고 글을 써야 했던 시대를 떠올리면 세상에 처음부터 당연한 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작 책상 하나가 대수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그 시대 가부장들은 그 대수롭지 않은 책상 하나를 재능 있는 여성들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물론 내가 머무는 이곳은 아무래도 쉬어가는 곳이라 책상이 없었던 것뿐이다. 사장님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책상처럼 쓰기에 적합한, 높이가 맞는 탁자가 생기자 오래도록 의자에 앉아 생활하게 되었고 이번 달부터 하기로 했던 글 정리에도 속도가 붙었다. 다시 규칙적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는 생활을 하게 되니 집에 있는 큰 책상과 몸에 익은 의자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역시 책상은 소중하고 큰 변화를 위해서는 책상이라는 '대수롭지 않은' 가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책상이 주어지고 모두에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세상이라 다행이다. 어른이 되어도 모두가 책상의 가치를 잊지 않고 책상을 빼앗기지도 않는 세상이 되면 더 좋겠지.


좋은 환경에서 미리 써둔 조각글들을 모아 하나둘 정리하다가 블로그에 남아 있는 옛 여행기를 발견하고 낯이 뜨거워졌다. 원색적인 짜증을 낙타가 침 뱉듯이 툭툭 내뱉는 미숙한 내가 거기 있더라. 글에서 그 시절의 내가 너무 잘 느껴져서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분에 넘치는 타지 생활이 끝나고 귀국한 후에 얼마나 아프게 될지 짐작도 못한 채 푸념도 기쁨도 넘치던 그 아이가 조금 안쓰럽고 그립기도 하다. 그때는 책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침대에서 빈둥거리고, 낯선 거리와 이국의 명소들을 누비며 그저 즐거웠다. 그 시절 내가 쓰던 널찍한 기숙사 방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직 나만의 방이었던,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집이었던 그곳이.



젖은 운동화


근래 해수면이 낮다 보니 갑자기 바다에 가까이 가고 싶어 져서 그만 사고를 쳤다. 평소엔 신발 때문에 잘 가지 않았던 바윗길에 올랐다가 내 안에서 천 년에 한 번씩 발동하는 충동, 신중함을 날려버린 답 없는 충동에 불이 붙어버렸다.


처음엔 다가올 일을 모르고 신나게 사진 찍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결국 젖은 바위를 밟고 미끄러졌다. 다행히도 엉덩방아는 면했지만 바다에 발이 첨벙첨벙 빠졌다. 물이 얕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깊었으면 제대로 넘어졌을 테고 넘어지면 그대로 미끄러져서 뒤통수부터 바위에 떨어졌을 거다. 위험한 상황이었고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이 잠겼는데, 두 켤레뿐인 운동화 중 하나가 젖어버렸는데, 난 그냥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찰박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운동화 세탁법을 물어보고 또 한바탕 웃다가 부엌 불에 야채를 잔뜩 담은 냄비를 올려두고 운동화를 찬물에 담가 두었다. 대강 빨아서 테라스에 내놓았는데 언제 마르려나. 둘 뿐인 내 운동화가 이젠 하나가 되었으니 내일은 물에서 모험 금지! 테라스 탁자에 말려둔 운동화 밑창을 보며 저녁을 먹다가 또 웃음이 터졌다. 바보 같은 행동도 여기서는 다 우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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