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영감의 섬
모 대학 수시 자기소개서에 외돌개에 대해 썼었다. 보통 입시용 자기소개서면 활동이나 수상 내역에 초점을 둘 텐데 나는 정말로 내 내면을 소개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순진했고, 그게 나다웠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장렬하게 1차에서 탈락해버렸지만 엄마와 호들갑을 떨며 내게 영감을 주는 섬 제주도와 피카소의 우는 여인을 닮은 외돌개에 대해 열심히 묘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이제 외돌개 할망처럼 나 말고 바다를,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면서 대학에 가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단언했다. 열아홉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 자신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는 늘 틀어박혀 있는 아이였다. 원래 아이들은 작고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 식탁 아래나 가구와 벽 사이의 공간 같은 데 기어들어가는 건 예사고, 옷장이나 벽장은 아주 험난하고 재미있는 모험의 땅이다. 어릴 적 할머니 댁의 작은 방은 낮에는 아이들의 공간이었고 밤에는 마침내 부엌에서 해방된 며느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공간이었다. 엄마와 작은엄마가 부엌에서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언니와 나, 그리고 사촌동생들은 그 작은 방을 차지하고 어떻게 재미나게 놀까 궁리하기 바빴다. 그 방에는 뒤통수가 튀어나온 옛날식 텔레비전이 있었고 널찍한 요가 늘 하나씩 깔려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에는 이불이 든 문 두 짝짜리 장롱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장롱의 맞은편에는 작은 협탁 위로 훔쳐보기 딱 좋은 위치에 창이 하나 나 있었다. 어느 날엔가 우리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옷이 걸린 오른쪽 장롱 말고 가로로 선반이 나 있고 빈 공간이 넓어서 이불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장롱문을 활짝 열었다. 두툼한 이불을 한 장 꺼내 한두 명은 요 위에 누워 머리끝까지 이불로 덮어 숨고, 누군가는 약간의 공간이 난 장롱 속에 기어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어둠이 무섭기도 하고, 이불을 꺼내다가 다른 이불들이 흐트러져서 문 사이에 껴 장롱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기도 해서 세로로 긴 한쪽 문을 살짝 열어두고서 장롱에 들아간 아이는 숨을 죽였다. 방문을 닫고 그러고 있으면 방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 가끔 마당에서 창을 들여다보는 기척이 나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킬킬거렸다. 없는 척하는 일이 왜 재미있었는지.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침범당하지 않는 아이들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좋았을까? 당연하지만 밖에서 보면 여기저기 좁은 공간마다 몸을 욱여넣은 아이들의 모습이 다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려서 모르니까 그저 즐거웠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훨씬 커진 덩치를 어디 숨기지도 못하는데 아직도 옷장 속 같은 공간에 숨어있고 싶어 한다. 이제는 나를 숨기려면 그 작은 장롱이나 이불속으로는 부족할 테니 그 작은 방을 통째로 차지하고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도 막아버려야 하는데도 그런 수고를 들이고 있다. 그것보다 나가는 게 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내 알은 언제쯤 깨질까? 알도 하나의 세계라지만 나가보고 싶은데. 사실은 '그 안에 내 얼굴을 닮은 양초 하나 타고 있는 방이 있어'(김승희, 「달걀 속의 생」) 껍질이 다 깨져버려도 나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에 나를 사로잡았던 어떤 영감, 내가 좋아했던 책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말하는 '오름'을 제주의 오름을 오르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의 기대는 지금도 유효하다. 제주도는 구름 한 점마저 그림이라며 탄성을 내질렀던 나의 사춘기 시절. 지금도 그 마음이, 느낌이, 감동이 여전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이 섬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을 보내주신 삼촌의 소식에 아, 역시 이곳은 오름의 섬, 영감의 섬이구나 했다.
이 섬은 수만 가지 얼굴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면면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제각각으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서 영감을 얻어가고 활력을 얻어가더라도 끝없이 빛날 수 있는 거겠지. 섬 또한 그 마음들 덕분에 더 빛날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이 섬을 대하게 된다. 감사히, 감사하게.
올레길 모험
신발이 한 켤레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물에서의 모험은 금지지만 산길에서의 모험은 가능하다. 나무터널을 지나 바다로 가는데 옷장 너머 나니아를 발견한 루시의 기분이 되었다. 법환에서 강정마을로 가는 올레길,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이룬 터널의 끝에서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드넓은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그 산길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하면 벅차올라 말을 잃게 된다.
조급함
왜 끝이 보이면 조급 해지는 걸까?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나의 하루는 아주 천천히 흐르는데, 지금까지 두 달의 시간도 아주 천천히 흘렀는데, 4월이 된 이후로 계속해서 남은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버릴까 봐 초조하다. 늘 할 일이 있으면 불안해하고 빨리 해치워야 마음이 놓이는 나라서 마무리, 짐 싸기라는 중대한 일이 한 달 안쪽으로 다가오니 괜히 조급한 모양이다. 해야 할 일이 없는 날들이 지나가고 돌아갈 준비라는 큰 계획이 다가오고 있으니 불안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곧 달리기 도전을 마칠 것이고 매일 조각글이나마 썼고 드물게 소설도 읽었다. 사진도 잔뜩 찍었고 과외도 스터디도 계속해왔다. 바다에도 빠져봤고 아무 데나 턱턱 걸터앉기도 해 봤고, 바위 위에도 올라가 봤고 절벽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기도 했다. 길치에 겁쟁이였던 내가 혼자 새로운 길을 나름 구석구석 다녀보기도 했지.
그러니 매일 심호흡을 하면서 조급함을 달래보기로 한다. 볕에 잔뜩 그을린 내 얼굴처럼 달라진 게 아주 많고 남은 날들도 애쓰지 않더라도 그저 좋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