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새 울음
해안에서 산길로 들어가는 길목 옆에 꽤 넓은 공터가 있다. 전선에 가려지지 않은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풀숲에서 생명을 찾는 건 쉽지 않지만 새 울음소리는 쉼 없이 들려와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이 공간을 채우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새들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이 공터의 주인처럼 느껴진다.
어느 새의 울음소리는 호호호호호휘하. 특이하다. 약간 헝거게임 시리즈의 모킹제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내 휘파람을 따라 하지는 않더라. 공터를 바라보며 특이한 지저귐을 듣고 있자니 오히려 사위가 고요해진다. 바람만이 쓸쓸히 뺨을 스치고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된다. 누구인지 모를 어떤 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뒤돌아 서자 바람이 온몸을 휘감듯이 불어오고 시간이 다시 흐른다. 귓가엔 기이한 새 울음이 스친다.
꽃 사진의 이유
어릴 때는 온 세상이 반짝거렸는데 그 반짝임이 맑은 눈에만 계속 보이는 건 줄 모르고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잊었다.
사춘기 때는 세상이 갑갑한 암흑천지 같았다. 내가 그다지 반짝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을 가릴 만큼 아파서 그랬을 거다.
학부 때는 다시 빛나 보려고 애썼지만 열등감 속에서 나 빼고 모든 것이 빛나 보였다.
너무 밝은 빛들은 그냥 하얗게 번지기만 해 다른 의미로 눈앞을 가린다. 빛나지 않는 나는 하얀 도화지 위에 실수로 찍힌 점을 지우듯이 지워지고 또 지워졌다.
그 후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다독임을 지나 침침한 시야로나마 작고 반짝이는 것들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길을 가다가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잔디를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반짝이는 것들을 사진에 잔뜩 담고 싶었다. 어릴 적 맑은 눈동자에 비치던 반짝이기만 하는 세상은 이제 없지만 그때의 반짝임을 순간순간 발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거나 또는 그럴 여유가 필요해지는 때가 오면 우리는 꽃 사진을 찍게 되는 걸까. 부모님들 사진첩에 풍경 사진이 가득한 이유를 조금쯤 알 것 같다.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 이유도.
완주 : 발 디딤
2/11~4/11.
딱 두 달만에 8주 도전을 완료했다 일주일 서울 가서 쉬었고 딱 한 회차 뛰다가 그만뒀었다. 이제 내 생일은 4월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난 기분. 약간 토하면서 30분을 어떻게 뛰어? 했던 첫 달리기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내가 진짜 30분을 쉬지 않고 뛸 줄이야. 퉁퉁 부어오른 발이 너무 뜨겁다. 내가 땅을 딛고 서있구나. 태어나 처음으로 나도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고 느꼈다. 그곳이 섬이라니, 설문대할망이 첫 발을 디뎠던 땅이라니 놀랍고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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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만두거나 포기해도 되는 이유는 끝도 없이 많았다. 잠깐 민망하면 이 도전은 없던 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힘들다고 그만두자고 할 때도 마음만은 끝까지 해내고 싶다고만 말해서 마음은 그 하나뿐이라서 끝까지 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마지막 도전이 미뤄질까 봐 충동적으로 오늘 나왔는데 정말로 해버렸다. 와 이게 되네의 연속이었던 런데이...
이제 선생님한테 메일을 보낼 생각이다. 저 잘했죠? 저 진짜 잘했어요. 그렇게 물어놓고선 내가 대답해버릴 거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인정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