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공기 샤워
어제 뛰지 않았다면 영영 마지막 달리기를 못했을 것 같다. 어제부터 쌓인 습기가 새벽에 범섬을 습격해 삼켜버렸고, 하늘과 바다 사이가 물안개로 메워졌다. 이를 어쩌나, 하고 중얼거리며 40분을 걸어 버스터미널에 왔는데 중산간 쪽 방향만 기이하게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그리고 습했다. 그냥 걷기만 했는데 온몸이 젖었다. 공기 속에서 샤워를 한다며 이런 느낌일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늘에 서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좋다. 땀은 계속 나서 마스크를 찢어버리고 싶다.
세계의 끝 - 여자 친구는 없지만
중산간 지방을 제외한 해안가가 모두 해무로 뒤덮였다. 마을에서 내려 모슬포항으로 걸어가는 길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시야는 좁았다. 안개 너머에 있는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멸망한 세계의 끝에 도달한다면 이런 풍경일 것 같았다. 터만 남은 무수연대에 불이 올랐던 시대에도 해무가 끼면 모두 멈춰버렸다고 했다. 누군가가 직접 불이 되어 다른 해안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읽었던 소설 『더 로드(The Road)』의 한 장면 같다. 무언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혹은 기대하지 않으나 별 수 없어서 걷고 또 걸었지만 도착한 세계의 끝이, 바다가 죽은 듯이 고요해 말을 잃는 어떤 순간. 바다 너머에도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안개만 자욱하다. 안개는 끝이고 모든 걸 삼킨다. 끝을 가려주는 병풍 같은 것. 우리는 끝을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기에 안개가 끼는 것인지.
우리가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동물이라 그런지 세계의 끝은 왜인지 바다여야 할 것 같아 금붕어를 데리고 바다로 향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키우던 반려동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개나 고양이, 가축은 네 다리로 어딘가 가려고 해 볼 수도 있겠지만 물에 사는 물살이(물고기)는 어떻게 하지? 그래서 주인공은 키우던 금붕어가 사는 수조를 어깨에 메고 길을 떠난다. 멀리, 멀리. 이 금붕어가 어떤 종인지, 태어난 고향이 어디인지, 어떤 기후와 어떤 물에서 살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저 바다로 그를 데려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은 땅끝이자 바닷가인 어딘가를 향해 그냥 걷고 또 걷는다. 사실 방향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냥 걷다가 당도하는 어느 바다에 금붕어를 풀어주고자 하는 주인공의 걸음과 목표는 맹목적이다. 결과조차 생각하지 않는 그의 걸음은 오직 생명의 무게만을 짊어지고 있다. 이유나 결과는 사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가 금붕어를 버리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힘든 피난길에 생필품도 아닌 수조를 지고 가는 주인공을 신기하게 보거나, 미련하게 보거나, 미쳤다고 여긴다. 주인공은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과학적인 이유로 수조를 가지고 긴 시간을 이동하는 건 너무 불가능하므로, 너무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거나 너무 많은 미래과학기술적 설명을 요하는 설정이므로 소설이 되긴 어려울 것 같은 이야기다. 아무튼 세계의 끝은 존재하고 바다여야 하며 희망이나 여자 친구나 그런 것들을 확신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어야 한다.
끝은 공허하나 아름답다. 꺼져가는 불씨가 되어 안갯속을 더듬으며 향하는 곳이기 때문에.
섬에서 섬으로
해무를 뚫고 섬에서 섬으로 향했다. 유배지로도 유명했던 제주도에 유배된 사람들의 절반은 이송되는 여로에서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도 배로는 열두 시간이 꼬박 걸린다던데, 그 옛날에는 몇 주, 몇 달이 걸렸을 길이다. 그 먼 바닷길을 나무배로 어떻게 건넜을까? 목숨을 건 여정을 반복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선장과 선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납작한 섬인 가파도를 걸으면서 보리밭과 유채꽃밭을 구경하고 돌하르방에 안겨 보기도 했다. 어떤 돌하르방은 악수를 청하고 있길래 기쁘게 그 악수에 응했다. 그렇게 작고 아름다운 청보리의 섬을 둘러보고 다시 큰 섬으로 돌아가는 길, 맞은편 배를 향해 손을 흔들자 그쪽에서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돌려주었다.
조금 걷히는가 싶던 해무는 잦아들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도로를 따라 제주시에서 서귀포시의 끝으로 향하는 길, 직접 암흑천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가로등 불빛도, 신호등도, 앞서 가는 차의 불빛도 안개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안개에 먹혀 사라지는 걸까, 우리도 안갯속을 걷다 보니 지구 반대편이나 먼 과거, 먼 미래에 서 있었다는 기담의 주인공이 되는 걸까. 두려워하며 신기해하며 오래도록 달렸고 우리는 마침내 안개를 넘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생각했다. 자연은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고 살아남도록 함으로써 죽음을, 그리고 살아있음을 잊지 않게끔 이끄는 무서운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