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잠꼬대
어제 너무 피곤한 하루를 보낸 터라 푹 잘 줄 알았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게 뭔지, 아니면 증상인 것인지, 아주 이른 새벽에 눈을 떴고 다시 잠들지 못했다.
옆자리에는 나와 달리 순식간에 잠들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잠들어 있었는데 잘 자다가 한숨을 쉬듯이 잠꼬대를 하기에 웃음이 터졌다. 한두 마디 더 하길래 계속 웃었더니 그도 꿈 밖으로 잠시 나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더라. 꿈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잠꼬대에 대한 대화가 잠시 오갔는데 대화를 하다 말고 그는 다시 눈을 감고 꿈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서너 번 반복되었고 우리는 매번 웃었고 매번 빠르게 헤어졌다.
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왜 누구는 잠들고 누구는 잠들지 못하는지. 하지만 결국은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나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못해 청명한 하늘과 베갯잇에서 터져 나온 솜뭉치 같은 구름 아래 산책을 하고 서로의 모습을 남겨주기도 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동행이 가져온 노란 필름 카메라를 내 것처럼 들고 다니며 소품으로 썼다.
우리는 종일 잊을만하면 잠꼬대 얘기를 꺼내면서 웃고 떠들었다.
괜찮은 처음
여기 와서 첫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오늘은 태어나 처음으로 디저트를 먹고 '너무' 맛있다는 말의 의미를 통감했다. 왜 우리가 좋은 일에 '너무'라는 부정적 의미의 부사를 쓰는지 의아했는데 과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알 것 같았다. 이 맛을 잊고 싶지가 않고 서울로 돌아가면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야말로 '너무' 맛있어서 기쁘고도 울적했다. 카페는 예뻤고 위치도 좋았고 창밖으로는 머리가 구름에 가려 현묘한 분위기를 내는 섶섬과 아름다운 바다가 보였다.
이 카페와 인절미 팥빙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고 꼭 데려가고 싶었다. 차가 없어서 혼자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워했는데 좀 떨어진 정류장을 기준으로 버스를 찾아봤더니 조금 시간을 들이고 많이 걸으면 다시 올 수 있을 듯하다. 다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무엇이든 처음이란 놀랍고 재미있다. 새로운 자극과 변화가 힘들고 아프기만 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