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 차 : 가끔은 함께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가끔은 함께


내성적인 것과 내향적인 것은 쉽게 동일시되거나 오인되곤 한다. 내향형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만날 때 아주 빠르게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데 있다. 이건 사람을 싫어하거나 낯 가리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떨 때는 문자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고 지치곤 한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극이 차단된 사적인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함께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순간은 번잡한 하루를 끝내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고요한 밤. 그 밤에 함께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일은 즐겁다. 가끔은 안 하던 야식 먹기 같은 일탈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동안 혼자 지냈다 보니 누군가가 내 부엌에서 과일을 씻고 설거지를 하고 그런 모습이 너무나 생소했다. 식당에 가거나 카페에 가거나 누가 해주는 음식을 먹는 일도 그랬다. 불면증이 치료된 건가 싶을 정도로 낮잠을 많이 잤던 이틀을 맛있는 카나페로 마무리하면서 내일 돌아가는구나, 조금 아쉽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청소할 시간이 돌아온 것도 좋다. 아침에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것으로 배웅을 하고는 달리러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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