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평행
바다는 언제나 하늘빛이다. 흔히 바다빛이라고 하면 파란색이나 초록색이 섞인 푸른색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정의되지 않는 바다의 빛깔은 항상 하늘에 달려있다. 바위틈으로 파도가 부서져 내리는 광경을 하염없이 보다 보면 어느새 구름이 저 멀리 나아가고 바다의 빛깔도 하늘에 맞춰 달라진다. 바다와 하늘은 맞닿아 있지 않지만 둘은 늘 서로를 닮고 서로를 담는다. 그런 평행선 같은 관계가 부럽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되려 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사이도 깊어질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조금만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주제를 꺼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진다. 친구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정치, 돈, 종교 얘기는 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을 어떻게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념 논쟁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을 들이대려 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많이 상처받았다. 물론 내가 상대방의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 줄 때도 있었겠지. 하지만 이 사회에서 나는 윤리적인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상처받는 쪽에, 혹은 부정당하는 쪽에 서 있었다. 내가 그냥 아는 사이 정도의 관계라도 유지하려고 서로 민감한 논의를 꺼내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먼저 주제를 꺼내고 그에 동의할 수 없는 나는 멀어지는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깊어지려고 할 때 오히려 가로막히며 막막함과 서운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관계. 반박하거나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러면서도 서로를 담고 닮아갈 수 있는 관계를 맺는다면 참 기쁠 텐데. 그런 관계가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하늘과 바다가 그렇다.
항상 이런 건 자연에서 배운다.
다시 달리기
도전은 끝났지만 이제 기초체력, 근력이 생겼을 뿐이다. 나는 계속 달리고 운동을 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자마자 달리기를 했는데 웬 걸, 페이스 올렸더니 힘들어서 15분 뛰고는 지쳐버렸다. 그래도 나의 다음 목표는 5분 기준 평균 페이스 6분대 달성하기. 그리고 돌아간 후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하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면 계속 새벽이나 저녁에 달리기를 할 거고 자전거도 타고 클라이밍도 배워보고 싶다. 줌바도 다시 열리면 해봐야지.
보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 좋게 말해 대쪽 같고 좀 다르게는 고지식한 편이라 몸이 먼저 유연해지면 마음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오늘은 별로 안 뛰었으니 내일 또 뛰어야지. 이런 근성은 마음이 몸에게 준 선물이다.
일상을 전력질주
빨래한다고 세탁실에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마다 내달렸다. 달릴 때 몸이 일정한 무게로 흔들리고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그 감각이 좋다. 바람이 좋아 저녁 산책을 나갔는데 걷고 또 걷다가 어느 순간 온 세상이 투명해 보여서 달렸다. 바다도 하늘도 길도 공기도 모두 다 투명해 보일 정도로 반짝여서 그 속에서 달리고 싶었다.
오래 달리기와 전력질주는 확실히 다르다. 온몸에 힘을 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주고 무릎을 올리는 동작을 크게 하며 땅을 강하게 박차고 달렸다. 중력이 느껴졌고 내 몸이 탱탱볼처럼 튀어 오른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지고 뒤를 돌아보니 순식간에 꽤 긴 거리를 뛰어넘었더라. 세상이 빛나고 바람은 시원하다. 무엇 하나 단단하지 않아서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내 몸조차 무너지지 않고 탄력적이기까지 한 고무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