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일 차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잘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잘


워낙 유명한 장면이긴 하지만 나 역시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이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이라고 인사하며 무대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미리 하루치의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 그리고 다시 보지 말자는 매정한 말이나 분노에 찬 말 대신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는 매일의 인사를 담은 종연사. 다시 보자는 인사가 아닌 기약 없이 건네지는 미래의 인사가 유쾌했다. 다시 보자는 인사는 다시 볼 때까지의 이별을 품고 있지만 하루치의 인사는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별 같지 않은 이별. 언제 다시 만나도 이상하지 않고 아무리 긴 시간 헤어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오늘 보고 내일 보더라도, 아니면 십 년 후에 보더라도 매일 보는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친구.


어젯밤 씻고 나왔더니 친구가 졸린 눈으로 깨어 있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왜 아직 안 자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내게 인사를 하려고 기다렸다고 했다. 친구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눈을 감았다.


배웅하는 길, 버스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급히 보내고 돌아서자마자 메시지가 왔다.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 줄 알고 천천히 하려 했다는 인사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너는 잘할 거야,라고 말해준 친구에게 잘 해왔고 잘하고 있지, 너도, 나도. 그렇게 답했다. 일하느라 잔뜩 지친 모습이 되어 찾아왔던 친구에게 다음 만남까지 건강하자고 했더니 노력하겠다는 답이 돌아와서 나는 기쁘게 약속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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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가득한 귤밭 옆길을 걷고 오늘따라 선명한 푸른빛과 물결, 따스한 햇살을 혼자 만끽하니 좋지만 허전하다. 속이 아플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시며 오늘만 산다고 말하던 친구가 아프고 싶지 않고, 내일도 살아가고 싶다는 내 대답을 가끔 기억해줬으면 한다. 혼자 남았지만 다정한 인사를 곱씹으며 다음을 헤아려보는 나처럼. 친구가 사준 유채꽃이 그려진 머리끈으로 머리를 올려 묶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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