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잘
워낙 유명한 장면이긴 하지만 나 역시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이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이라고 인사하며 무대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미리 하루치의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 그리고 다시 보지 말자는 매정한 말이나 분노에 찬 말 대신 언제 어디서나 떠올릴 수 있는 매일의 인사를 담은 종연사. 다시 보자는 인사가 아닌 기약 없이 건네지는 미래의 인사가 유쾌했다. 다시 보자는 인사는 다시 볼 때까지의 이별을 품고 있지만 하루치의 인사는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별 같지 않은 이별. 언제 다시 만나도 이상하지 않고 아무리 긴 시간 헤어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오늘 보고 내일 보더라도, 아니면 십 년 후에 보더라도 매일 보는 사람처럼 어색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친구.
어젯밤 씻고 나왔더니 친구가 졸린 눈으로 깨어 있었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왜 아직 안 자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내게 인사를 하려고 기다렸다고 했다. 친구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눈을 감았다.
배웅하는 길, 버스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급히 보내고 돌아서자마자 메시지가 왔다.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이 있을 줄 알고 천천히 하려 했다는 인사들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너는 잘할 거야,라고 말해준 친구에게 잘 해왔고 잘하고 있지, 너도, 나도. 그렇게 답했다. 일하느라 잔뜩 지친 모습이 되어 찾아왔던 친구에게 다음 만남까지 건강하자고 했더니 노력하겠다는 답이 돌아와서 나는 기쁘게 약속했다!라고 답했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가 가득한 귤밭 옆길을 걷고 오늘따라 선명한 푸른빛과 물결, 따스한 햇살을 혼자 만끽하니 좋지만 허전하다. 속이 아플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시며 오늘만 산다고 말하던 친구가 아프고 싶지 않고, 내일도 살아가고 싶다는 내 대답을 가끔 기억해줬으면 한다. 혼자 남았지만 다정한 인사를 곱씹으며 다음을 헤아려보는 나처럼. 친구가 사준 유채꽃이 그려진 머리끈으로 머리를 올려 묶는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