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일 차 : 들꽃의 봄, 너무 어려운 보통, 밤 산책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들꽃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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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큼 계절의 변화를 변덕 없이 보여주는 존재가 있을까. 날씨가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이미 피어난 꽃은 꿋꿋이 봄은 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봄이 오면서 이 섬의 길은 우후죽순 자라난 들풀과 들꽃으로 인해 좁아졌다. 줄기에 잎사귀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길의 반만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흙을 갈아엎어 길을 내고 콘크리트로 돌로 땅의 숨을 막아보아도 작은 숨구멍 사이사이로 길가에는 들풀이 자라고 들꽃이 피어난다. 좁은 길은 그러한 생명력의 산물이어서 우리가 걸을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심지어 죽을 뻔한 길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가느다란 초록빛들에 감사하며 좁다란 길을 경쾌한 걸음으로 걷게 된다. 이런 봄이다.



너무 어려운 보통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로 열려 있고 어느 정도로 반응하고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사는 걸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고 움직이고 옷을 갈아입고 외출하고 돌아와 씻고 먹고 자는 그 모든 일이 매번 심호흡을 하며 해내야 할 정도로 너무 어려웠던 건 나뿐일까? 아무렇지 않은 듯 모든 걸 해내는 날조차 눈을 감을 때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뉴스 하나하나에 숨이 차도록 답답해지는 것도? 사람들은 보통 어느 정도로 이 넓은 세상을 힘들어하며 마음 쓰며 살아가는 걸까?


누군가는 나를 예민하다고, 자기 연민이 과하다고, 자기주장만 강하다고, 너무 무겁게 산다고 지긋지긋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가 사는 법이고 사실상 어떤 측면에서는 훌륭한 동력이었다면 어떤가.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느끼며 살아내는 법을 알고 싶다.

세상 무엇도 나와 분리될 수 없는데, 모른 척하고 혼자 잘 살면 부끄러움에 두 뺨이 뜨거워지는데 어떡해? 남이라는 벽이 정말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어떡해? 내 일이 아니다, 불편하다, 피곤하다, 가르치지 마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밉고 사실은 어느 정도 나도 그런 사람이어서 내가 더 밉기도 했다.


결국 누군가의 사랑에 아픔에 대해 싫으니 숨기고 살라고 말하거나 남일이라고 말하게 만드는 둔감한 보통은 닮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무서워하는 거겠지. 내가 닮아가버릴까봐. 그러니 좀 더 기울어지고 기울어져서 넘어지더라도 넘어진 그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세계가 있으면 한 번쯤 꽈당 넘어져서 생각과는 다른 감촉을 느끼며 땅을 짚어봐도 괜찮지 않나.


가끔 이렇게 답답해하다가도 계속 별나게 살자, 소소하게 다르게 살자, 부끄러워하며 살자, 그러곤 한다.



밤 산책


이 섬이 그리웠던 이유는 밤바다 때문이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 좋아서.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게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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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 때라 파도소리가 다소 아득하게 들려오고 희고 붉고 푸른 색색의 별빛이 반짝인다. 일정한 풀벌레 소리를 배경 삼아 목을 빼고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별이 늘어난다. 내 생의 몇 배는 되는 시간을 건너온 작은 빛의 근원이 아직까지도 저 먼 우주에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오늘 밤 내게 닿은 그 빛은 아직 존재하지만... 어마어마한 질량과 중력을 지닌 바위나 가스 덩어리인 별이기보다는 광원으로부터 멀어져 그 긴 시간과 거리를 지나서도 살아있는 빛과 같은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

그 빛은 어디에서나 찰나적으로 보이겠지만 별보다도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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