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 차 : 기다리는 중, 시선 속에서, 청바지의 청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조용하게 별난 대학원생의 85일간의 제주산책

by 여현
20220421%EF%BC%BF162350.jpg?type=w773

기다리는 중


새벽부터 계속 날이 흐려서 맑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에 습기 속에서 달리기를 했고 근력 운동도 조금 했다 보니 오전 내내 어깨와 허벅지가 뻐근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밀린 설거지와 바닥 청소를 하고 맛있는 야채찜도 해 먹었다. 배앓이도 좀 하면서 앉아 있는데 아직도 날이 흐리기만 하다.

날이 풀리면 그제 다녀온 강정포구 쪽 산길을 걷고 싶다. 어젯밤처럼 밤 산책도 하고 싶고 보목리, 하효리에 다시 가서 섶섬과 검은 모래도 다시 보고 싶고 흑임자 빙수를 한 번 더 먹고 싶기도 하다.

일주일이 짧지도 길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비라도 내리기를 기다리는 중.



시선 속에서

네댓 살 된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바위틈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얀 원피스 아래 형광 장화를 신은 넌센스한 옷차림도 귀여웠다. 저 아이들에게는 희미해질 수도 있는 유년기의 추억을 내가 지켜보고 있다. 내가 잊어버린 추억들도 누군가의 눈길 속에 살아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도 내게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만큼 나도 무엇이든 가능한 한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이 본 것에 집중하겠지만 나는 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죄책감마저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도 내게는 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지 못했던 무언가, 지나친 무언가를 다 보고 싶다. 그러므로 내 시선은 내 감수성의 밝고 어두운 면일 수 있겠다.


내가 보고 느낀 모든 순간들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런 데서 오는 모양이다. 신의 시선 아래 만물이 존재한다는 버클리의 경험론처럼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시선 아래 존재가 결정된다면, 눈을 돌리지 않고 보지 못했던 것까지 치열하게 살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르기에. 내가 시선 앞에서 괴로워만 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청바지의 청


공기에도 무게가 있고 질감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습한 날에 청바지를 입고 나가면 착잡하고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찝찝함이 바지와 살갗 사이에 채워진 공기로부터 전해진다. 공기 중의 수분과 염분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감싸는 감각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 사실은 내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를 감각하는 건 또 재미있다. 나에게 다리가 있고 다리가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로 이루어져 있다니!

오늘은 약간 습기가 남아있지만 쾌청하다. 파스텔톤의 푸른색에 솜뭉치의 가장자리처럼 날리는 구름들. 하늘색은 이름부터 하늘색이라 물빛은 또 그 하늘색의 반사된 색채라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채도로 어느 정도 표현해볼 수 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습도와 무게로 오늘의 하늘을 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볕이 공기를 바짝 말린 날 하늘만큼 푸른 청바지를 입으면 가볍지만 날카로운 뜨거운 공기가 바지를 뚫고 허벅지에 닿고 내 몸에서 흐른 땀과 염분이 살갗을 스칠 것 같다. 산책하기 참 좋은 날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8일 차 : 돌아갈 곳, 흔적도 남기지 않고